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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바보’라는 단어가 쓰일 때는 의미가 180도 달라진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정치인을 뜻한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돼버린 ‘바보 노무현’이 대표적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당선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 출마를 선택했다. 지역주의에 맞섰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국민들은 ‘바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지어줬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에는 수많은 바보들이 탄생했다. 바보 정치인들은 주로 선거 때 나타난다. 2016년 20대 총선 직전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 파동과 민주당의 비례대표 셀프공천 논란이 뜨거웠을 당시 정반대의 선택을 한 ‘또하나의 바보’들이 있었다. 손쉽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선택하기보다는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부겸 장관은 이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바보다. 김 장관은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시절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합류한 그 유명한 독수리 오형제 출신이다. 정통 TK 출신으로 민주화운동 경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만약 한나라당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정치적 출세가도를 달렸을 것이다. 열린우리당 합류 이후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 수 십 여년에 이르는 현실정치 역정에서 김 장관이 보수정당에 몸담은 기간은 6년에 불과했지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서러웠을까? 김 장관은 2011년에 ‘나는 민주당이다’는 제목의 저서까지 낼 정도였다. 2012년 19대 총선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대구 출마라는 무모한 도전에도 나섰다.
민주당 차기 당권경쟁은 이해찬·김진표·송영길 의원의 3파전으로 좁혀졌다. 사실 민주당 당권경쟁보다 더 뜨거운 관심사는 김부겸 장관의 출마 여부였다. 김 장관의 출마 의지는 무척 강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설득에 불출마를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역설적으로 김 장관은 전대 불출마 논란을 거치며 정치적 주가가 급등했다. 최대 수혜자가 됐다. 만일 문 대통령이 전대 출마를 용인했다면 김 장관을 차기주자로 힘을 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대로 불출마를 권유한 것 역시 김 장관에 대한 정치적 신임이 두텁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김 장관은 한마디로 본인의 몸값을 올리며 정치적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재미있는 건 여권의 차기구도가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올초만 해도 모든 건 분명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후보 경선 라이벌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반 년 만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안희정 전 지사는 성폭행 미투로 불명예 퇴진했고 정치적 재기 또한 불가능하다. 이재명 지사 역시 각종 의혹에 따른 정치적 내상으로 차기 대권은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김 장관은 또하나의 바보에서 또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는 대권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모든 정치인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