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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서' 혹은 '논란으로'…7924점서 뽑은 특별한 215점

오현주 기자I 2017.04.24 00:15:0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전 '균열' '삼라만상'
과천관 '균열' 근현대 화제작 내걸어
'미인도' 작가명 빼고 방탄유리안에
서울관 '삼라만상' 4년 수집작서 엄선
13억원 최고가 김환기 '새벽#3' 공개

설치미술가 이불의 ‘사이보그W5’(1999). 관능적인 여성의 포즈에 현대의 성형인공물인 실리콘을 얹어 완성했다. 여전히 사이보그를 조정하는 주체는 남성이라고 고발한다.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보자는 미술가들의 시도를 모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소장품전: 균열’에 나왔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7924점이다. 직접 구입한 작품이 4025점이고, 기증을 받거나 관리를 전환해 소장하게 된 작품이 3899점이다. 회화와 드로잉&판화, 한국화, 조각, 공예, 사진, 서예, 뉴미디어 등 종류도 다양하다.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은 회화로 전체 소장품 중 34%를 차지하는 2695점이다. 그 뒤는 드로잉&판화 1662점(21%)이 잇고 있다. 이어 한국화(931점), 조각(764점), 사진(909점) 등이 10%대다.

어떤 해에는 특정작품을 집중적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2013년에는 한국화를, 2015년에는 회화와 뉴미디어를 사들였다. 작품구입 예산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61억원을 예산으로 편성했다. 지난해에는 53억원, 2015년에는 46억원, 2014년에는 36억원, 2013년에는 31억원이었다.

미술관은 해마다 특정한 주제를 선정해 소장품을 공개하는데 올해는 우연찮게 과천관과 서울관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다. 과천관은 내년 4월 29일까지 ‘소장품특별전: 균열’을, 서울관은 8월 31일까지 ‘삼라만상: 김환기에서 양푸둥까지’를 열고 있다. 과천관은 수장고를 통틀어 특별한 94점을 끌어냈고 서울관은 지난 4년간 구입한 932점 중 121점을 뽑아냈다.

이번 소장품전에서 특히 두 작품이 초미의 관심을 끄는 중이다. 과천관의 ‘미인도’와 서울관의 ‘새벽 #3’이다. ‘미인도’는 천경자(1924∼1915)의 위작논란이 정점에 오른 상태에서 공개됐고 ‘새벽 #3’는 미술관이 이제껏 구입한 작품 중 가장 비싼(13억원) 김환기(1913∼1974)의 그림이다.

김환기의 새벽 #3’.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가장 비싼(13억원) 작품이다. 국립현대 서울관 신소장품전 ‘삼라만상’에서 볼 수 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균열’의 한가운데 선 ‘미인도’ 등 94점

“굳게 지켜온 세계에 금이 가고 친숙한 것들이 낯설어지는 경험이 항상 유쾌한 것은 아니다. 아니 차라리 성가시고 어색하고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한 경험에 가까울 것이다.” 미술관 측 학예연구실이 ‘균열’ 전에 앞서 밝힌 전시기획은 괜한 엄포가 아니다. 흔히 미술품에 기대하는 벅찬 감동이나 따뜻한 위로는 섣부르다. 20세기 이후 한국 근현대미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의도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보자는 시도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만큼 ‘균열’ 전에 나온 작품들은 단단하게 구축한 권위나 강요된 질서를 깨
1930년대 한국 표현주의를 대표하는구본웅의 ‘친구의 초상’(1935). 과천관 ‘균열’ 전에 전시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뜨리려는 여러 세대 예술가들의 창조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몸의 균열’ ‘믿음의 균열’이란 소주제로 이 의지를 묶어냈다. 일단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미술이 집중적으로 반영한 몸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1930년대 한국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미술가 구본웅(1906∼1953)의 ‘친구의 초상’(1935)이나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하이웨이 해커’(1994)라는 로봇 연작이 대표적이다. 구본웅이 친구인 시인 이상의 내면을 절묘하게 잡아내 몸의 분위기에 몰입했다면 백남준은 포스트모던적인 패러디로 현대 혹은 미래사회의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설치미술가 이불(53)은 관능적인 여성의 포즈에 현대의 성형인공물인 실리콘을 얹어 ‘사이보그 W5’(1999)를 완성했다. 사이보그를 조정하는 주체는 남성이고 신인류조차 여성성은 남성 위주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고발이다. 서양화가 정복수(64)의 ‘생명의 초상’(1985)도 다르지 않다. 인체의 형상을 왜곡해 그린 후 배경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물질성만 가진 몸의 괴기스러움이 도드라지게 했다.

‘믿음에 균열’을 보여준 작품으로는 공성훈(52)의 ‘개’(2008)가 있다. 개와 관찰자 사이의 거대한 심연을 잡아내 섬처럼 유배된 개가 당면한 어둠을 외롭게 잡아낸 작품. 설치미술가 김범(54)이 그저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뉴스 앵커의 무력함을 표현한 ‘무제(뉴스)’(2002)도 눈길을 끈다.

여전히 뜨거운 위작논란에 놓인 천경자의 ‘미인도’(1977). 과천관 ‘균열’ 전에서 볼 수 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나온 각각의 작품이 정말 대단하지만 이번엔 단 하나의 작품에 선두자리를 내줬다. 천경자의 ‘미인도’(1977)다. 작가이름을 떼내고 방탄유리에 갇혀 모습을 드러낸 ‘미인도’는 말 그대로 시대적 균열을 보인다. 29×26㎝로 생각보다 왜소한 작품은 크기와 상관없이 전시장 맨 끝 구석자리를 다 차지했다. 화려한 꽃장식을 머리에 얹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선은 그림 속 인물의 각진 얼굴과 홀쭉한 뺨으로 향한다. 지난 26년간 모진 풍파를 다 겪은 미인의 모습.

미술관은 “‘미인도’ 진위 여부 논란이 결국 균열의 의미고 그 논란을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자못 비장한 자세다. 그럼에도 천경자 유족까진 설득하진 못했다. 이번 ‘미인도’ 공개전시와 관련해 유족은 국립현대미술관장과 실무자·관계자 전원을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추가 고소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사는 일은 삼라만상’…13억 김환기 그림 등 121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의 ‘새벽 #3’(1964∼1965)의 위용은 역시 대단했다. 서울관 ‘삼라만상’ 전의 중심에 선 ‘새벽 #3’를 두고 미술관은 “특별히 조명을 2개 달아 관람객이 잘 볼 수 있게 했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새벽 #3’는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14점 중 한 점. 하늘색 배경에 점점을 박아 마치 하늘과 땅의 미동을 말하는 듯한 작품이다. 전면점화로 옮겨가기 이전의 김환기 반추상세계를 온전히 내보인다.

비싼 걸로 치면 설치미술가 강익중(57)의 ‘삼라만상’이 6억원대로 김환기의 뒤를 잇는다. 은빛 불상을 가운데 두고 문자·그림·기호 등으로 압축한 세상풍경을 그려 넣은 3인치짜리 작은 캔버스 1만여점을 원통형으로 올린 대작이다. 원통 안에 들어서면 현기증을 유발하는 세상만사가 관람객을 감싼다. 그 덕에 이번 전시의 표제작이 됐다.

서양화가 안창홍의 ‘베드 카우치 1’(2008). 서울관 ‘삼라만상’에 나왔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한국근대미술의 걸출한 화가로 꼽히는 이쾌대(1913∼1965)의 ‘여인 초상’(1940년대), 김기창(1914∼2001)의 ‘정청’(1934)이 나왔다. 서양화가 안창홍의 인물초상화에 대한 새로운 제안인 ‘베드 카우치 1’(2008), 사진작가 김도균이 물에 비친 건물을 포착해 공간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내놓은 ‘SF.Be-5’(2010) 등이 발길을 붙든다.

피날레는 중국 사진작가 양푸둥의 ‘죽림칠현’에 뒀다. 양푸둥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편의 ‘죽림칠현’을 제작해 일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는지를 비디오물로 제작했다. 미술관은 이 중 3·4편을 소장하고 있다. 7명의 20·30대 젊은이들의 여행을 따라잡은 양푸동의 시선을 빌려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다양성, 개인의 존재성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이른다.

중국 사진작가 양푸둥의 영상 ‘죽림칠현IV’(2006) 중 한 장면. 서울관 ‘삼라만상’에서 볼 수 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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