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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예수회의 산 미겔 관구장이던 시절, 당시 교황보다 열 살쯤 아래였던 토마스 신부는 사제평의회에서 베르고골리오 관구장을 만났다. 토마스 신부는 베르고골리오 관구장이 눈에 띄는 사제는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마요광장 인근의 주교좌성당 가까이서 장사를 하는 신문팔이 안드레스 씨는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의 교황 선출 뉴스가 나온 직후 취재를 나온 교황청 일간지 기자에게 “때로는 일반인 옷차림으로 와서 신문을 사갔다. 인사로 두어 마디 말을 건네는 매우 조용하고 친절한 분이었다. 그야말로 보통사람 중의 한 사람처럼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분이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제266대 교황으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이 선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깜짝 놀랐다. 전통적으로 교황은 로마에서 공부하고 교황청에서 근무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추기경들 가운데 선출됐다. 그러나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은 로마 유학은 물론 교황청 근무 경력도 없었다. 학문적으로 주목받지도 않았다. 게다가 교황을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예수회 출신에 남미 대륙의 추기경이었다.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이 되기에는 출생과 성장 모두가 평범함 그 자체였다. 서민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열세 살부터는 공장에서 청소일을 하며 집안을 도왔다. 학창시절부터 신부가 되겠다며 교회활동에 열심이었던 것도 아니다. 사춘기 즈음에는 이웃집 동갑내기 소녀를 좋아했고 아르헨티나 청년들이 그랬듯이 탱고와 축구에 열광했다. 10대 후반 영적 체험을 한 후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성적이 뛰어난 학생 축에는 끼지도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면서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검약을 실천하며 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는 행보가 도드라지면서다. 무엇보다 그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교황의 평범함이다.
교황의 일생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영웅설화’의 특별한 에피소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교황은 그저 사제로서 지켜야 할 직분과 사제가 따라야 하는 예수의 삶을 묵묵히 실천해 왔다. 범접 못할 공간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 말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과거를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밀착 취재한 교황청 공식 일간지인 오세르바토레 로마노의 크리스티안 마르티니 그리말디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교황은 주변에 볼 수 있는 착한 이웃처럼 평범한 사제였다. 그 모습은 추기경이 되고 교황이 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교황에게 배워야 할 비범함이 바로 그 평범함이다.”
▲말말말
“젊은이 여러분! 일상의 본분에, 일에,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몰두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는 생애의 이 소중한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아는 데 달려있습니다 (2013년 5월 1일·성 베드로광장 일반인 알현에서)
“저는 나가서 걷고 싶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리가 부르는 ‘칼레제로,’ 거리의 사제였습니다”(2013년 7월 28일·기내 기자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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