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신고된 ‘확정일자’ 자료를 조사해 그동안 임대소득을 감췄던 집주인들에게 올해 5월부터 세금을 물릴 예정이다. 하지만 전·월셋집을 구한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지 않고 계약을 맺는 경우가 적지 않다보니 과세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11일 본지가 한성대 이용만 교수(부동산학) 자문을 통해 통계청 인구센서스와 정부의 확정일자 신고 자료를 비교·분석한 결과, 지난해 확정일자를 받은 전국의 전·월셋집은 총 137만3172채로 연간 실거래량 추정치(210만4876채)의 65.2%에 불과했다. 지난해 실제로 이뤄진 전체 임대차 거래 3건 중 1건 이상(34.8%·73만1704채)이 정부 통계에는 전혀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체 전세, 보증금 있는 월세, 순수 월세, 사글세 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을 따져 이들이 몇 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다니며 임대차 계약을 맺는지 추산한 결과다. 전국에서 이뤄지는 전·월세 실거래량 추정치가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확정일자 자료에서 누락된 과세 사각지대는 대부분 월셋집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임차가구(748만5907가구)의 28%(210만4876가구)가 매년 전·월세 계약을 새로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전체 세입자 네 집 중 한 집 꼴로 새 집으로 이사해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는 뜻이다. 주거 유형별로 전세 가구는 해마다 전체의 27.6%(103만9900가구), 사글세를 포함한 월세 가구는 25.5%(106만4976가구)가 신규 계약을 맺었다.
반면 지난해 확정일자 신고 건수는 전세 83만3350건, 월세 54만663건에 불과했다. 신규 임대차 계약을 맺은 전셋집 5채 중 1채, 월셋집 절반 가량이 확정일자를 받지 않은 것이다.
확정일자는 거주지 주민센터와 법원 등기소에서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서에 도장(印)을 받는 날짜를 말한다.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자신의 보증금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이용된다. 따라서 보증금이 적거나 아예 없는 월세 거주자는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용만 교수는 “보증금이 적은 월세 거래 상당수와 순수 월세, 사글세 대부분이 확정일자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의 과세 사각지대가 많아 향후 거센 조세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A공인 관계자는 “‘깡통전세’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집도 많았는데 이걸 기준으로 과세한다고 하자 졸지에 세금을 내게 생긴 집주인들의 불만이 크다”며 “일부 임대인들 사이에선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전·월세 계약을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월세 소득공제 제도를 병행해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는 확정일자를 받은 세입자만 소득공제를 신청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존 신청자 대부분이 확정일자 신청 가구와 중복된다. 또 이후 신청 조건 및 범위가 일부 완화됐지만 자영업자나 저소득층 등 월세 가구에 대해서는 월세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소득공제 제도가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확정일자나 월세 소득공제 만으로 전체 임대차시장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제대로 된 통계 정보조차 구축하지 못한 채 대책을 내놓다 보니 형평성·실효성 논란 등 시장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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