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춘동 기자] 1000조 원을 넘나드는 가계부채 문제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자 민간소비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가계부채 해결은 중산층 복원을 위한 첫 단추이자 차기 정부의 핵심과제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가계부채 해법은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이다. 이 돈으로 빚을 탕감해주거나 저금리 장기 분할상환을 유도해 신용회복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구상은 당장 빚을 성실하게 갚고 있는 채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와 함께 도덕적 해이 논란에 부딪힐 전망이다. 사실상 공적자금으로 과연 개인의 빚을 갚아줘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도 필요해 보인다.
◇ 가계부채 해법이 경제공약 핵심
가계부채 해법은 박 당선인의 여덟 가지 경제분야 공약 가운데 가장 정점에 있다. 박 당선인의 해법은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원리금 감면과 상환기간 연장으로 빚의 늪에서 구해주고, 다른 한편으론 선제적 채무재조정으로 신용회복을 지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중심엔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이 있다.
구체적으론 이 기금으로 금융회사로부터 연체채권을 사들여 일반인은 최대 50%, 기초생활수급자는 70%까지 빚을 탕감해주게 된다. 현재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신용회복 과정에서 적용되는 탕감 비율이 30~40% 선임을 고려할 때 아주 높은 수준이다.
내년에만 120만 명의 연체채권 12조 원 어치를 매입하고, 이후 매년 약 6만 명씩 5년간 30만 명의 경제적 재기를 지원한다는 게 박 당선인의 구상이다. 서민들의 고금리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1인당 1000만 원 한도 내에서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10%대 저금리 장기대출로 전환해주는 프로그램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 선제적 채무재조정 프로그램도 가동
선제적 채무재조정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현재 신용회복복위원회가 운영 중인 프리워크아웃 적용 대상을 기존 채무불이행 기간 연속 30일 초과 90일 미만에서 1년 이내 연체일수 총 1개월 이하로 확대할 계획이다.
연체가 없더라도 총부채상환비율(DTI)이 60% 이상이거나 40~60% 중 사정이 어려운 경우를 선별해 금리 인하와 상환기간 연장을 추진한다. 대학 졸업자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학자금 대출 역시 상환능력에 따라 원금의 50%까지 감면해주거나 장기 분할상환을 유도한다.
금융회사들이 배드뱅크 이외 기관에 채권을 매각하게 되면 의무적으로 채무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채무자 동의 없이 민간자산관리회사에 채권을 매각해 빚 독촉에 시달리는 부작용을 방지하는 차원이다. 학자금 대출은 일정 기간 추심을 금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연체된 학자금 대출을 일괄 매입해 취업 후 상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을 받은 채무자 183만 명중 105만 명에 대해선 아예 취업한 후에 상환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 형평성 논란·도덕적 해이 해결해야
박 당선인이 내건 가계부채 해법의 가장 큰 취약점은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 문제다. 고의로 빚을 갚지 않으면 뾰족한 대책이 없고 국가의 재정부담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빚을 탕감해주더라도 일자리 마련 등 소득원이 보장되지 않으면 도루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대출자들은 상실감에 빠질 수도 있다. 국민행복기금이 정부의 재원으로 마련되는 일종의 공적자금이라는 점에서 결국 세금으로 빚을 갚아준다는 반발을 살 수도 있다.
금융권의 참여를 이끌어낼 유인책도 마땅치 않다. 이자감면과 만기연장, 저금리 전환대출 등은 금융권의 참여 없인 사실상 어렵다. 대출부실의 책임을 물어 손실을 부담시킬 순 있지만, 금융권의 수익성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어 일방적으로 강요하긴 어렵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가계부채 문제는 다각적이면서도 점진적으로 풀어야 한다”며 “특히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유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