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의 노태우 "동생이 내 비자금 가로챘다"

조선일보 기자I 2008.04.19 09:57:50

병상의 노태우 前대통령, 재우씨에 소송
추징금 내고도 남을 것으로 계산한 듯

[조선일보 제공] 노태우(76·사진) 전 대통령이 친동생 재우씨와 치열한 '재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 재직 시절 5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1997년 2629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노 전 대통령은 "동생에게 맡긴 비자금을 돌려받아 미납한 추징금(약 343억원)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자녀가 대신 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노 전 대통령이 동생과 소송까지 벌이는 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 희귀병을 앓으며 병상에 누워 있어 소송을 벌일 형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비자금 중 120억원을 동생에게 맡겨 냉장·창고회사 ㈜오로라씨에스를 설립했는데도, 동생이 주주명부를 위조해 실제 주주인 나 대신 자신과 자기 아들 호준씨, 그리고 장인 이흥수씨를 주주로 둔갑시켰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주주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소송을 통해 회사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 노 전 대통령은 "동생과 조카가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며 검찰에 탄원을 내기도 했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노 전 대통령의 조카 호준(44)씨가 ㈜오로라씨에스 소유의 110억원대 부동산을 56억원에 자기 소유 유통회사에 팔아넘겼다는 혐의(배임)를 밝혀내고 호준씨를 불구속 기소,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 탄원이 동생과 조카가 '형사 처벌'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민사소송은 비자금을 되찾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소장에 따르면, ㈜오로라씨에스의 주식 액면가는 1주당 5000원으로, 발행주식 56만 주의 총 액면가는 28억원에 달한다. 노 전 대통령이 승소할 경우 추징금 미납분을 메우기 위해 노 전 대통령 명의로 된 재산은 모두 가압류되기 때문에 실제로 손에 쥐는 것은 없다. 더욱이 미납 추징금 343억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업계에선 주식의 실제 가치가 액면가보다 훨씬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이 회사의 땅값이 크게 뛰었고, 노 전 대통령이 추후 호준씨가 헐값으로 매각했다고 주장한 부동산을 찾기 위한 소송까지 추진해 승소할 경우 그 돈까지 합치면 추징액 미납분을 해결하고도 남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 이 '초과액'을 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이 '재산 싸움'을 실질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와 김 여사의 조카이자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소송을 주도하고 있다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현재 박철언 전 장관은 모 체육대학 무용과 여교수가 자신의 재산 176억원을 빼돌렸다며 경찰에 고소한 상태이며, 이 돈도 비자금과 관련됐을 것이란 의혹이 일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 '소뇌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진단받고 국군서울지구병원에 입원해 병세가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뇌위축증'은 소뇌가 점점 작아지는 병으로 언어장애·손발 운동장애·어지럼증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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