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1983년 한국 최초의 과학고이자 특목고인 경기과학고등학교가 경기도 수원에 문을 열었다. 열악한 콩나물 교실에서 획일화된 평준화·주입식 교육만 이뤄지던 시절이었다.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고급과학인력 양성을 위해 설립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과학고를 모델로 삼은 경기과학고는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혁신적인 교육환경을 도입했다. ‘실험 실습 위주의 토론식 교육’과 ‘한 학급 정원 30명’…. 각 중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몰려들었고, 이 가운데 내신과 필기, IQ 테스트, 적성검사를 거쳐 60명의 ‘과학고 1기생’들이 선발됐다.
올해는 이들이 졸업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총기 넘치던 까까머리 영재들은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과학 한국을 이끌 엘리트가 되라’는 사명을 갖고 있던 이들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과학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본지는 소재가 파악된 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실시했다.
◆절반이 박사 됐다=1983년 입학한 1기생 60명 중 1986년 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54명이다. 3명은 2학년 때 전학을 갔고, 3명은 3학년 때 자퇴했다. 자퇴 이유는 진학을 둘러싼 학교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졸업 후 29명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부 1기생으로 진학했고, 10명은 서울대, 15명은 연세대와 고려대로 각각 진학했다.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인 29명이 박사학위를 땄다. 졸업생의 72%인 37명은 현재 이공계통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정부기관과 기업의 연구원이 21명으로 가장 많고 교수 9명, 벤처기업인 7명 등이다.
◆한국 이끄는 사람들=김형신 충남대 교수는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위성의 주역이다. KAIST 재학 중이던 1989년 ‘인공위성 제작에 도전할 학생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연구팀에 합류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3년 뒤인 92년 8월 강대국이 지배하던 우주 공간에 우리별 위성을 쏘아올렸다. 경기과학고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고교 시절을 “불필요한 일들 없이 학문과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학문은 깊이가 있었으며, 학교생활은 무척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최길주 KAIST 교수는 생명공학 분야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29세 때 미국 브랜다이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금호생명과학연구소를 거쳐 2002년부터 KAIST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식물의 잎이 빛을 받아 전달되는 과정을 규명한 논문이 1999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실리기도 했다.
백윤주 부산대 교수는 학계와 벤처를 두루 경험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1990년 그가 대학원 시절 한글화에 성공한 레이텍(LaTex)은 지금까지 전국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학위 논문을 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프로그램이 됐다.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0년에는 당시 소규모 벤처기업이었던 NHN의 기술총괄이사(CTO)를 맡으며 네이버가 포털시장 1위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과학고 출신 1호 박사`로 기록된 정근창씨도 경기과학고 1기의 대표주자.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서 만 26세 나이로 박사학위를 딴 정씨는 LG화학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초소형 리튬이온 전지를 만드는 한국파워셀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예 동기생들이 모여 벤처기업을 차린 경우도 있다. 휴대전화 액정표시장치(LCD) 구동칩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벤처회사 ㈜픽셀칩스는 안광수 대표를 비롯해 김민성 기술개발연구소장, 김하중 선임연구원이 모두 경기과학고 1기생이다.
◆다른 길을 걸어간 사람들=그러나 네 명 중 한 명은 다른 길을 갔다. 전공과는 동떨어진 부서에 근무하는 회사원 5명을 비롯해 금융권 2명, 가톨릭 신부, 교사, 판사, 공무원, 화가, 의사, 한의사 등 분야도 각양각색이다.
서울중앙지법 김정운 판사는 경기과학고 1기로 입학했다가 자퇴한 3명 중 한 명이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동기들이 공부와 실험에 몰두하는 동안 그는 사회문제로 눈을 돌렸다.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입학할 때는 천문학자를 꿈꿨죠. 훌륭한 선생님들과 실험 위주의 수업 덕분에 학교 생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2학년쯤 과학자로서의 삶에 회의가 들더군요.”
원영태씨도 3학년 때 자퇴하고 서울대 미대에 진학해 화가의 길을 걷고 있고, 경기 양평군 용문성당 배경석 신부도 경기과학고 1기 출신이다. 신동국 SH자산운용 팀장은 금융계로 진출한 경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