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발행시장인 공모주 시장에서 발행회사와 주간사회사를 한 축으로 한 "셀러(seller)"와 ,투신사등 기관투자가들을 또 다른 한축으로 한 "바이어(buyer)"간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5월 "공모가 거품 논란"으로 시작된 이들 셀러와 바이어간의 신경전은 코스닥 시장이 침체하면서 투신사들의 "공모가 담합의혹"으로 번지더니 이제 발행시장의 대형 바이어인 투신사들을 아예 발행시장에서 제외시키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이번주 코스닥 등록을위해 공모를 실시하는 오리엔텍과 서울제약은 3대 투신을 배제한 채 공모물량을 배정키로 했다.희망공모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한 투신사들에게 물량을 배정할 경우 실제 공모가가 훨씬 낮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문제가 불거진 발단은 3대 투신사의 공모가 담합 의혹이었지만 실제 문제의 근원은 지난 5월 옥션의 등록을 앞두고 제기되기 시작한 "공모가 거품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증권가의 정설이다.
코스닥 발행시장은 7월 이전만 해도 철저한 "셀러스 마켓"이었다.즉 주간사 증권사와 발행회사(등록회사)가 주도하는 시장이었다.발행회사는 공모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에 공모가를 높게 제시하는 주간사증권사를 선택했고, 주간사 증권사는 발행회사를 놓치지 않기위해서라도 공모가를 높게 제시했다.
여기엔 제도적 맹점도 한몫했다.즉 종전의 수요예측은 공모희망가보다 확정공모가가 반드시 높게 책정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투신 등 기관투자가들도 나름대로 적정주가를 산출해 수요예측에 참가하지만 희망공모가격보다 낮게 제시할 경우 공모주를 한주도 받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공모가를 높게 써낼 수밖에 없었다.이는 이른바 "공모가 거품"의 배경이 된다.
이같은 발행시장의 "거품"은 분명 왜곡이었지만 적어도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이익이 나는 상황에선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즉 신규등록종목들이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해 연일 계속해서 상한가를 치는 상황에선 공모가가 다소 높게 책정되더라도 이해당사자들인 발행회사,주간사회사,기관투자가 그리고 공모주를 받은 일반 청약자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7월들어 상황이 돌변했다.세종하이테크 사건으로 신규등록종목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렸고 발행시장을 둘러싼 제도도 바뀌었다.즉 수요예측과정에서 공모희망가보다 낮은 공모가격을 제시한 기관투자가들에게도 물량이 배정될 수 있도록 "가격밴드제"가 도입됐다.
더우기 코스닥 시장이 침체를 거듭하면서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투자가들의 90% 이상이 기관확약서(배정받은 물량을 언제까지는 팔지 않겠다는 약정서)에 보유확인기간을 1개월 미만으로 기재하기 시작했다.이는 신규등록종목들이 거래일 수 하루나 이틀만에 대규모 기관물량이 터지면서 주가가 하한가로 급락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인터넷 대표기업으로 관심을 끌었던 옥션이나 사상최고가 공모가로 화제를 모았던 네오위즈,한국정보공학 등을 비롯해 최근 시장조성에 들어간 창민테크 중앙소프트 사라텍 등이 모두 등록 초기 기관물량을 얻어맞고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대표적인 종목들이다.한국정보공학은 창투사이며 2대주주인 미래에셋벤처캐피탈마저 보유지분을 대량 매도했다.
"공모가 거품논란" 직후 대형 투신사중 일부는 아예 수요예측 과정에서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발행시장에서 서서히 바이어의 입김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이 때쯤이며 공모가 담합의혹이 제기된 것도 비슷한 시기다.
때마침 등록을 준비중인 "페타시스"의 공모가가 주간사 증권사가 제시한 가격(9000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4000원으로 결정이 되고 3 투신사가 똑같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공모가 거품논란"은 "공모가 담합의혹"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금감원이 대투 한투 현투 삼성투신 등 4대 투신사 관계자들을 불러 수요예측과 관련한 경위파악을 하고 나선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이들 4대 투신사들은 담합의혹에 대해선 무혐의처리 됐으나 조사과정에서 "공모가 산정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금감원에 충분히 설명을 했다"(모 투신사 CBO담당 펀드매니저)고 할 정도로 "공모가 거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최근 코스닥 발행시장에서의 논란은 단순한 "공모가 담합"이냐 "공모가 거품"이냐의 관점이 아닌 공모가 결정방식이 시장기능을 찾아가는 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증권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모든 담합은 "악"이며 건전한 시장기능을 저해하는 요소지만 시장 참가자들의 담합을 조장하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시장참가자들의 잘못만은 아니며 "오히려 이를 조장하는 제도나 환경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논리는 여기서도 성립된다.
물론 공모가가 내려가면(거품이 빠지면) 시장 참가자들의 이해관계는 상반될 수 있다.우선 발행회사는 공모를 통해 조달하려던 자금사정에 문제가 생긴다.오리엔텍의 경우 공모를 통해 조달하려던 장비도입 계획이 공모가가 내려가는 바람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또 프리코스닥 과정에서 펀딩에 참여했던 창투사나 투자자에게도 손실을 안겨줄 수 있다.
페타시스의 경우 한강구조조정자금과 산업은행이 출자전환형태로 지분참여할 때 들어간 가격이 4000원이며 이번 공모가격도 4000원이다.펀딩에 참여한 투자자 입장에선 은행금리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다.
벤처기업 입장에서도 발행시장의 위축은 심각한 위협요소다.코스닥 등록을 위한 중간 과정인 펀딩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모물량을 배정받는 기관투자가나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는 일반투자자 입장에선 공모가 거품이 빠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또 신규등록종목에 대한 "선구안"을 기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모가"가 해당 기업의 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느냐 못하느냐에 있고 이는 단순히 주간사와 발행회사를 한 축으로 한 "셀러"와 대형투신사를 또 다른 축으로 한 "바이어"간의 파워싸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건전한 시장기능"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 발행시장이 그간 주간사증권사와 발행회사가 주도권을 쥔 "셀러스 마켓"에서 투신사를 중심으로 한 "바이어스 마켓"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보는 것도 일반투자자 입장에선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