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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동서울변전소 재검토 시사…김성환 장관 “대안 살펴보겠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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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길 기자I 2025.11.23 08:26:36

경기 하남 감일동 방문해 주민들과 첫 간담회
주거밀집지역에 ‘50만볼트 변환소 신설’ 쟁점
‘대체 부지 대안-갈등중재위 신설’ 검토 약속
절차상 하자, 한전 문제 등 전반적 재검토도
“전력망 강행 없다…주민들 곧 다시 만날 것”
기후부 “주민께 송구…투명하게 정보 공개”

[하남=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전력망 국책사업인 동서울변전소 증설 관련해 대체 부지 가능성을 비롯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시사했다. 과거 정부에서 하남시 주거밀집지역에 초고압 설비 설치를 추진하면서 절차상 하자나 위법 여부가 있었는지 면밀히 재검토하고 주민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과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해 주민수용성을 고려한 에너지 정책이 추진될지 주목된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22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감일동 주민 등이 포함된 ‘동서울변전소 증설반대 5자협의체’와 2시간 가량 비공개 간담회를 하면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5자협의체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서울변전소 증설 논란이 지난해 여름에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소관 부처 장관이 감일동 현장을 찾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대체 부지 등 대안 모색 △국무총리 갈등조정위원회 회부를 포함한 갈등 중재위원회 설립 여부 검토 △빠른 시일 내에 주민들과 다시 만나 소통 △동서울변전소 지정고시, 한전의 주민설명회 관련 절차상 하자 문제, 주민수용성 문제 재검토 △주민들이 갈등의 불씨가 된 ‘특별지원금’(보상금) 지급 논의 중단을 촉구했지만 한전이 자체 내규로 특별지원금 논의를 계속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법하거나 문제가 되는 점이 있었는지 재검토 등을 약속했다. 관련해 김 장관은 한전 등으로부터 보고를 다시 받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2일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주민센터에서 주민들과 만나 동서울변전소 증설 논란 관련해 “다른 대안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며 “갈등위원회 등 다른 중재위원회를 만들 수 있는지 여부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사진=김성환 장관 블로그)
김성환 장관이 22일 감일동 주민 등이 포함된 ‘동서울변전소 증설반대 5자협의체’와 만나고 있다. 5자협의체는 주민들이 결성한 동서울변환소반대태스크포스(TF)를 비롯해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하남갑 의원), 국민의힘 이용 전 의원(하남갑), 하남시청, 하남시의회로 구성돼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주민 대표들을 비롯해 추 위원장, 이현재 하남 시장, 이재식 기후부 전력망정책관, 서철수 한국전력(015760) 전력계통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김성환 장관 블로그)
쟁점이 되고 있는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은 한전이 추진 중인 국책사업이다. 공식 사업명은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초고압직류송전(HVDC)변환소 증설’ 사업(한전 100%·송전선로 비용 포함하지 않은 총사업비 6996억원)이다. 이는 기존 변전소(345kV)를 실내에 설치하는 옥내화 공사와 함께 초고압 설비인 500kV 변환소를 신설하는 것이다. 500kV 변환소가 주거밀집지역에 설치되는 것은 전국 첫 시도다.

500kV 변환소는 총길이 280km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선로의 2단계 종착지다.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동서울변전소의 변환소 신설과 관련한 동서울·수도권 송전선로는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국정과제 순위에서 가장 이른 ‘0단계’로 표시돼 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대 우선 공급 약속, 인공지능(AI) 시대 수도권 전력 수요 증가와 맞물려 전력망 신설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한전은 당초 2026년까지 변환소 증설을 종료하기로 했으나 공사가 지연되면서 완공 시기를 2027년 12월로 수정했다. (자료=한전)
이에 정부는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지난달 2일 제1차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열고 전국 99개의 송전선로와 변전소 구축 사업이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했다. 하남시 감일동의 동서울변전소도 이같은 패스트트랙에 지정·포함됐다. 이같은 지정고시는 이달 5일 관보에 게재됐다.

한전은 전원개발촉진법(전원법),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에 따라 진행돼 위법한 절차가 없는 만큼 신속히 변환소 공사를 착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대로 가면 제2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또 터질 것”이라고 증설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주민들의 핵심 요구는 500kV 변환소를 감일동이 아닌 대체 부지에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유아, 청소년, 다자녀, 신혼부부 등이 주로 사는 4만명(1만4000가구) 주거밀접지역에 50만볼트에 달하는 변환소가 신설되고, 신규 원전 5기 규모의 전력 설비(설비용량 7GW)가 위치하게 되면 생존권·환경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참조 이데일리 11월9일자 <“아이들은 ‘전력망 마루타’ 아닙니다”…추미애 하남 무슨 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2일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주민센터에서 주민 등이 포함된 ‘동서울변전소 증설반대 5자협의체’와 2시간 가량 비공개 간담회를 한 뒤 나가고 있다. 주민들은 “지정고시 해제하라”, “증설 반대”라고 외쳤고, 김 장관은 주민들을 살펴본 뒤 취재진 질의응답 없이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사진=최훈길 기자)
100명 넘는 주민들이 ‘변전소 OUT’라고 쓰인 풍선을 들거나 ‘동서울 변전소 증설 반대-이전하라’, ‘우리 아이들은 실험용 쥐가 아닙니다’, ‘국내 최초 주거인접 최대 규모 전력증설계획(7GW) 백지화하라’ 등의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지정고시 해제하라”고 외쳤다. (사진=최훈길 기자)
5자협의체는 지난 6일 성명서에서 “이번 동서울변전소 증설 관련 갈등 사안을 국무총리 갈등조정위원회에 정식 회부할 것을 요구”한다며 “정부와 한전의 기습적·배제적 행정으로 발생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국무총리와 중앙정부 차원의 조정과 책임 있는 대응을 확보하며, 주민과의 소통과 협의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 해결 방안을 주도적으로 마련하는 단계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취재 결과에 따르면, 김성환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이같은 주민들, 5자협의체 요구사항에 대해 “(대체 부지 등) 다른 대안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며 “갈등위원회 등 다른 중재위원회를 만들 수 있는지 여부도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이어 김 장관은 “‘상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니네 맘대로 진행하면 말이 안 된다’라는 게 주민들 입장”이라며 “여기까지 온 과정 자체에 하자가 없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전이) 사업설명회 관련해 주민들에게 객관적인 내용을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화장하듯이 분칠했는지도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김 장관은 주민들이 제기하는 절차상 하자, 주민수용성 문제를 꼼꼼히 살필 것임을 강조했다. 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한전은 ‘7차례 주민 설명회를 했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주민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고, 상의 없이 대충 진행했고, 500kV 변환소 신설에 대한 설명도 아니어서 과정의 투명성이 결여됐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며 “집중적으로 논의해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 장관은 “‘한전이 단지별로 몇억원 씩 주면서 흥정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절차를) 공정하게 해야 한다”며 “(법에 따른 것이 아닌) 지역민원 무마 차원에서 하는 것 같은데 (한전은) 그 내규를 보고해달라. 한전이 이런 식으로 주민들에게 ‘언제까지 동의하면 뭐를 주고 동의 안 하면 뭐를 안주겠다’는 식으로 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사안) 성격상 아주 시간을 많이 끈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며 “(간담회가) 오늘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할지 다른 식으로 할지 별도 상의해서 말씀드리겠다”면서 추가 간담회를 예고했다.

김 장관은 “주민들에게 모자란 것이 있거나 (추진 과정에) 하자가 있거나 하는 등을 포함해 검토하고 다음에 어떻게 (소통)할지는 시간 끌지 않고 곧바로 검토해 연락 드리고 함께 하겠다”며 “부족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개별적으로 말씀해달라”고 말했다. 이재식 기후부 전력망정책관은 주민들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우려하는 부분을 다 주시면 정부 차원에서 최대한 자료를 (투명하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간담회 직후 블로그에 “AI·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의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은 필수적”이라며 “그렇다고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 장관은 “안전성과 환경성, 사업 추진절차 등에 대한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함께 해법을 논의했다”며 “앞으로 지금까지 사업이 진행되어 온 전 과정을 되돌아 보고, 지역주민의 요구사항도 꼼꼼하게 살피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주민과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어린이가 동서울 변전소 증설 관련해 ‘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인가요?’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최훈길 기자)
추미애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이데일리와 만나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추진해 절차상 문제가 많은 점, 전국 최초로 주거밀집지역에 전자파 우려가 심한 초고압 전력 설비를 설치하는 문제, 과거 개발 독재 밀어붙이기식 강행하는 문제 등을 공유했다”며 “김 장관이 ‘오늘을 기점으로 앞으로 주민들과 소통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 의미가 있었다”고 전했다.

주민측 김상택 감일지구 총연합회장은 “김 장관이 ‘고시 절차에 하자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겠다’, ‘초고압직류송전(HVDC) 관련 환경영향평가가 없이 추진돼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부분에 대한 절차상 문제, 주민수용성 문제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했다”며 “주민 편에서 사안을 보고 다시 만나겠다는 열린 결말로 끝나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100명 넘는 주민들이 간담회가 열리는 주민센터 밖에서 현수막을 펼치며 증설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광암동은 감일동과 함께 동서울변전소 최근접 주거지다. (사진=최훈길 기자)
다만 주민들이 요청하고 있는 동서울변전소 증설 관련 △지정고시 해제(철회) △부지 이전 등에 대해서는 이날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김 장관은 이날 주민들이 지정고시 해제, 부지 이전 등에 대해 확답을 요구하자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추후 간담회에서 이같은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주민들은 지정고시대로 추진될 경우 고시 게재일(11월5일) 60일 이후인 내년 1월5일 이후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강행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시행된 전력망 특별법에 따르면 앞으로는 전력망 구축을 위해 지자체로부터 받아야 하는 인허가는 지자체가 60일 내 허가 여부를 회신하지 않으면 허가한 것으로 간주된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행정절차도 지자체가 아니라 사업자인 한전이 수행한다. 지자체 특별교부세에 영향을 주는 합동 평가 지표에 ‘국가기간 전력망 구축 협력 지표’도 신설한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한 엄마가 감일동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감일동은 영유아, 청소년, 다자녀, 신혼부부 등이 주로 사는 4만명(1만4000가구) 주거밀접지역이다. (사진=최훈길 기자)
김은경 동서울전력소 증설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김 장관이 ‘초고압 설비인 50만볼트 변환소가 전국 최초로 주거밀집지역인 하남 감일동에 설치된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 인지했다”며 “이런 상황을 인지했고 조만간 다시 주민들과 소통하기로 한 상황에서 지정고시대로 강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위원장은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을 강행할 경우 주민들 반발이 세질 것이고 그에 따른 우려를 충분히 (김 장관에게) 전달했다”며 “지금도 충분히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만나 소통하면서 증설 반대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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