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업고 정치불안까지…이대론 일본처럼 된다

김미영 기자I 2025.01.02 06:00:00

이데일리 경제전문가 35명 대상 설문조사
올해 한국경제의 최대 걸림돌 ‘정치불안’…트럼프 이슈 압도
“정치불안, 일본식 장기불황의 시발점 될 수도”
“저출생 대응 위한 구조개혁 시급”

[세종=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올해 경제 성장률은 1.5%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반기까지 탄핵정국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기업들은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을 미룰 것이다. 제주항공 참사도 소비 위축에 큰 영향을 주면서 경제가 많이 가라앉고 있다.”(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 전문가들이 내놓은 올해 한국경제 전망은 ‘암울’ 그 자체다. 국내 정세가 탄핵정국의 격랑에 휩싸이며 이달 20일 출범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인상 등 보호무역주의 강화 공세엔 사실상 무방비 상태란 진단이다.

일본처럼 저성장 장기화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단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의 정치불안이 저성장 장기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단 지적도 나왔다. 이에 단기적으로는 정치 불안을 해소하고 장기적으로는 저출생, 수도권 쏠림과 같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은 구조적 문제 해결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진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정치불안, 트럼프보다 한국경제에 더 나빠”

1일 이데일리가 경제전문가 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5년 경제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1.4%, 18명)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1%대 후반으로 봤다. 1%대 초반까지 추락할 것이란 응답률도 37.1%(13명)에 이른다.

21세기 들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 아래를 기록한 건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지난 2009년(0.8%)과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0.7%),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2023년(1.4%) 등 3번뿐이다. 올해가 금융위기·코로나 사태에 버금가는 위기의 해가 될 것이란 얘기다.

특히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한 탄핵정국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 대다수(71.4%, 25명)가 ‘국내 정치적 이슈’를 올해 한국경제의 최대 걸림돌로 꼽았다. ‘트럼프 신정부 출범’(11.0%, 4명) 응답률을 압도하는 수치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한국 경제의 최대 변수로 손꼽힌 것을 고려하면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더 크다는 의미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불안의 여파는 핵폭탄급”이라며 “소비가 위축되고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고 있다. 국가신인도도 하락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정치불안, 저성장 장기화의 시발점 될라”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저성장 장기화의 길에 들어섰단 우려도 크다. 전문가 중 3분의 1(34.3%, 12명)은 저성장이 장기화하며 물가상승률마저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이미 7~8년 전부터 일본처럼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기업들의 해외투자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게 대표적인 증거”라며 “부동산에만 돈이 몰릴 뿐 국내엔 투자할 곳이 없다는 것이고 한국에 희망이 많지 않다는 뜻”이라고 했다.

다만 ‘저성장 기조에 돌입하겠으나 일본처럼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34.3%로 동률을 이뤘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일본과 달리 정보통신기술(IT)이나 신기술로 옮겨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일본처럼 완전히 활력이 사라진 건 아니다”고 판단했다.

저성장 장기화 속에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전문가도 17.1%(6명)였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일본만 해도 30년 만에 물가가 오르고 있다”며 “한국은 인위적으로 누리고 있는 형편이나 물가상승 불안요소를 다 갖고 있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치 불안이 한국경제를 ‘저성장 장기화의 굴레’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도 봤다. 박기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장기화하면 일본식 장기불황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저성장 장기화 여부는) 내란·탄핵사태가 얼마나 신속히 해결되고 경제불확실성이 해소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 하락 고착화를 막고 저성장 기로에 선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해법으로 저출생(37.1%, 13명)과 수도권 집중 해소와 균형발전(31.4%, 11명)을 최우선 과제로 손꼽았다. ‘부(富)의 부동산 쏠림 현상 해결’(28.6%, 10명)과 ‘일가정 양립정책’(17.1%, 6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합계출산율이 세계 꼴찌 수준으로 국가소멸론까지 나오는 만큼 출산율을 높이는 대책 마련과 함께 인구감소에 대응할 구조개혁이 시급하단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외에 ‘주력산업의 산업개편’, ‘기술 개발 및 산업구조조정’, ‘기업 규제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영범 교수는 “인구감소로 노동 투입량이 줄면 생산이 줄고 저성장은 불가피하다”며 “노동, 자본, 기술력을 올리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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