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고객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자전거래’를 이용해 고객 계좌 간 손실을 떠넘긴 것은 불법이지만, 문제는 증권사 고유 자산을 이용해 고객 손실을 보전해준 행위다. 이 역시 자본시장법 위반의 여지가 있지만, 지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자금시장이 얼어붙었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증권가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특히 최근 일부 증권사가 위법성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고유자산으로 고객 손실을 떠안게 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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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앞서 금감원은 하나증권·KB증권 등 9개 주요 증권사에 대한 채권형 랩·신탁 업무실태를 집중 점검한 결과 9개 증권사 모두 위법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 가운데 30여명의 운용역들을 수사 당국에 통보했다.
금감원 조사 결과 한 증권사는 지난해 7월부터 다른 증권사와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만기가 도래한 고객 계좌에서 기업어음(CP)을 다른 증권사에 매도하고, 이와 유사한 CP를 다른 특정 고객 계좌에서 고가 매수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총 6000여회에 걸쳐 약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 전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A증권사는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목표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한 고객의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총 11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하기도 하고, 증권사 자체 펀드를 만들어 고객의 CP 등을 고가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총 7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채권형 랩어카운트·특정금전신탁 계약이 모두 목표 수익률을 꼭 보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증권사가 무리하게 목표 수익률 달성에 나선 것은 해당 상품의 고객이 기관과 대기업 등 대형 고객이기 때문이다. 목표 수익률을 내지 못하면 증권사 입장에서는 앞으로 대형 고객을 유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위와 같은 자전거래를 통한 목표 수익률 달성은 증권가에서는 암묵적으로 행해졌던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졌다.
◇ “자금경색 시기 불가피 선택…상황 고려해달라” 호소
증권가에서는 고객 간 ‘돌려막기’는 불법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은 고객 간 손실을 전가한 행위는 형법상 배임 혐의라고 판단하고, 관련 내용을 수사 당국에 알렸다.
다만, 증권사 고유 자금으로 손실을 보전한 경우에 대해서는 금융 당국이 당시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무조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건전한 시장질서와 공정한 관행 등을 정립하는 당국의 역할 고려할 때 이 같은 시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제재 수위를 결정해달라는 얘기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유동성이 둔화했고, 특히 CP와 같은 단기 자금을 운용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증권사는 당국에 위법성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고유 자산으로 고객 손실을 떠안게 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이 환매를 요청해도 유동성이 좋지 않아 시장에서 물량을 흡수할 수 없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취지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자금을 쓰는 부분에서 회사 즉, 법인에 대한 배임이 발생했는지의 관점으로 자본시장법상 행정 처분 대상으로 보고, 회사에 어떤 손해를 끼쳤는지 등을 고려하고 있다”며 “증권사의 요청에 대해서는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