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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지고 파는 한전·가스公 내년 채무불이행 위기

김형욱 기자I 2023.04.03 06:00:00

산업부, 한전·가스공사 원가회수율 공개
적자·미수금 쌓이며 채권 발행도 곧 한계
정치권 개입에 요금 정상화 계획 미지수
"요금 지금 안올리면 더 큰 위기 맞을 것"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한국전력공사(015760)한국가스공사(036460)가 이대로면 내년부터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 논의가 기약 없이 연기된 가운데 최악 재무위기에 놓인 한전·가스공사의 불확실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됐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과 가스공사의 원가회수율은 각각 70%, 62.4%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전기와 가스를 100원에 사 와서 각각 70원, 62.4원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전기·가스 공급을 도맡은 이 두 공기업은 이미 최악의 재무위기 상태에 놓여 있는데다 국제 발전연료 시세도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여서 판매요금 조정 없인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 섞인 분석이다.

한전, 적자 누적에 채권발행도 한계

한전은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팔면서 적자와 부채가 누적되고 있다. 한전은 2021년 5조8000억원, 2022년 32조6000억원의 유례없는 대규모 적자를 낸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5조3000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한전은 올 1월 기준 전기를 1킬로와트시(㎾h)당 164.2원에 사서 147.0원에 팔았다. 운영비를 뺀 원가만으로도 약 12%(17.원) 밑지는 상황이다. 그나마 산업부가 1년 한시로 도입한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를 통해 민간 발전사의 이익을 제한한 결과다.

한전은 채권 발행을 통해 적자를 버티고 있는데 이마저 한계점에 이르렀다. 한전은 지난해만 37조2000억원, 올 들어도 이미 5조3000억원의 채권을 추가 발행했다. 누적 발행 규모는 74조6000억원이다. 작년 말 한전법 개정으로 채무불이행 사태는 가까스로 막았으나, 올해 5조원 이상의 추가 적자가 발생하면 내년 다시 채권 한도가 막힐 전망이다.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 발행 급증은 다른 기업의 채권 발행에도 지장을 줘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지난해 한전채 발행액은 국내 전체 채권 발행액의 4.8%다.

한전 관계자는 “올해 한전 적자가 5조원 이상 발생하면 작년 말 늘린 채권 발행한도를 다시 넘어설 전망”이라며 “채권 발행에 차질을 빚는다면 한전이 재무위기 상황이 되는 것은 물론 전력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가스공사의 원가 회수율은 한전보다도 낮다. 가스공사 자체 집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8조6000억원까지 쌓인 미수금이 올 연말엔 12조9000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그나마 최근 국제 가스 가격이 낮아져 전망치가 줄어든 수치가 이 정도다. 내년부터 연 이자비용만 4700억원, 하루 13억원이 된다는 것이다.

가스공사는 법적으로 국내 천연가스 공급 단가에 원가를 반영하고 있어 수치상으론 영업적자를 기록하지 않지만 실제론 정부의 가격 통제 아래 국내 도시가스 공급사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한 채 미수금으로 남긴다. 언젠간 회수한다는 전제가 깔렸지만, 그동안은 채권 발행을 통해 메워야 한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3번째)이 지난 3월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정 요금 조정안 논의는 잠정 연기

현 시점에선 요금 인상을 제외하고는 뾰족한 해법이 없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달 31일 2분기 요금조정안을 논의했으나 이를 잠정 연기했다. 산업부와 한전·가스공사는 2일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열려 했으나 이마저도 취소됐다. 산업부 등은 추가 자구안 마련 등을 통해 국회와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요금 인상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각각 1조5000억원, 2조7000억원의 비용을 줄인다는 재정건전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 수요가 적은 지금 인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상 1년 중 가장 더운 7~8월은 전기와 발전용 가스 수요가 연중 최대치에 이른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2분기 요금을 동결한 채 7~8월이 돌아오면 지난 겨울 ‘난방비 폭탄’ 이상의 ‘냉방비 폭탄’이 닥칠 수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적정한 가격 인상을 통해 지금부터 이용자에게 충분한 가격 신호를 줘 에너지 절약을 유인하고, 한전과 가스공사에도 안정적인 수급 관리와 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마련할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진행한 한국전력공사 전력그룹사 비상대책회의. 한전은 이날을 시작으로 유휴부지 매각 등 재정정상화 계획을 추진해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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