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명예훼손죄 지나친 확장 경계해야…표현 자유 고려"

하상렬 기자I 2022.08.19 06:00:00

''벌금형'' 명예훼손 사건 3건 무죄 취지 파기환송
"건전 여론 형성·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을 위험"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대법원이 명예훼손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사진=방인권 기자)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건의 명예훼손 사건에서 유죄로 판단한 각 원심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했다고 19일 밝혔다.

수원시 소재 한 빌라를 대리로 관리하고 있던 A씨는 2018년 누수 문제로 공사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공사는 신속히 진행되지 못했고, A씨는 그 이유를 빌라에 임차해 거주하는 피해자들의 탓으로 돌려 책임추궁을 피했다. A씨는 피해자들이 누수 공사 협조 대가로 과도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막말·욕설을 했다는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A씨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 발언이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과 이에 대한 피고인의 고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했다.

또 B씨는 2017년 고양시 소재 한 병원 정문 앞에서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재수가 없어 죽었다’는 등의 막말을 했다는 내용의 문구가 담긴 전단지를 병원을 출입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로 판단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고, 이어진 2심은 일부 발언만을 유죄로 판단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B씨가 이사건 전단지를 배포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의료사고 발생 후 의사가 유족과의 면담 과정에서 환자 생명을 경시하는 모욕적인 언행을 한 것은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에서 의료인의 자질과 태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피해자에게 의료행위를 받고자 하는 환자 등 의료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권 행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정보로 공적인 관심·이익에 관한 사안”이라고 판시했다.

그 밖에 C씨는 2019년 고등학교 동창 10여명이 참여하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피해자가 내 돈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감방에서 몇 개월 살다 나왔다’, ‘너희도 조심해라’라는 등 내용의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C씨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50만원의 선고유예를 명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검찰 측이 C씨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C씨가 만든 채팅방에 참여했던 상대방들은 C씨, 피해자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의 동창들로서 특정한 사회집단으로 볼 수 있다”며 “이사건 게시 글은 사실에 기초해 피해자와 교류 중인 다른 동창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려는 목적이 포함돼 있고, 실제로 C씨가 이 사건 게시 글의 말미에 그러한 목적을 표시했기에 C씨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정한 비판마저 처벌함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이나 민주주의의 균형 잡힌 발전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다”며 “위 3건의 판결은 이러한 전제에서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을 고려해 명예훼손죄의 지나친 확장을 경계하고 그 성립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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