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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적막을 깬 건 장을 보기 위해 경창시장을 찾은 김수영 양천구청장이었다. 남편에게 ‘떡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김 구청장은 아침밥은 물론 등산 갈 때도 김밥 대신 떡을 챙겨갈 만큼 즐겨 먹는다. 그래서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냉동실에 쟁여둘 떡 구매는 필수 코스다.
이날도 어김없이 떡집을 찾은 김 구청장은 진열대 앞에 서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가장 좋아하는 쑥떡과 함께 6종류를 골라 담은 그는 5만원을 가게 주인에게 건네며 “다음에 와서 또 사갈 수 있게 영수증에 남은 잔액을 적어 주세요”라고 야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날 1만5000원어치 떡만 가져가고, 거스름돈을 따로 받지 않았다. 그 대신 잔액인 3만5000원을 다음에 쓰기로 떡집주인에게 약속했다. 이는 서울 양천구가 진행하고 있는 ‘착한소비 캠페인’의 일환이다.
양천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착한소비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착한소비 캠페인은 평소 자주 찾는 음식점, 슈퍼마켓, 이·미용실 등에서 미리 일정 금액 이상 결제해두고,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는 게 골자다. 코로나19 장기화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이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 지출비 부담으로 가게 운영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결제를 통해 자금 융통에 숨통을 틔워주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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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7월 말부터 진행 중인 ‘착한소비 3탄’ 캠페인은 착한소비를 독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수증 모아 지역경제 살리기 이벤트’를 더했다. 관내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에서 5만원 이상 구매한 영수증을 모아 거주지 동 주민센터에 제시하면, 주방 세제 등 생활용품을 지급한다. 주민들이 착한소비를 할 수 있도록 일종의 유인책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는 현대백화점 목동점 등 민간기업의 물품 후원을 통해 민·관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민 반응도 좋다. 양천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주민 2373명이 영수증 이벤트에 참여했다. 현대백화점이 후원한 주방세제 3000개 가운데 80%가 이미 지급됐고, 이달 중 나머지 600여 개도 모두 소진될 전망이다. 양천구는 증정품이 한 달 여 만에 동나면서 관내 다른 기업과 착한소비를 이어갈 방안을 현재 논의 중이다.
김 구청장은 떡집과 과일가게에서 각각 5만원어치씩 결제한 영수증을 들고 신월2동주민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에서 주민센터까지는 걸어서 2~3분이면 닿는다. 황광선 신월2동주민센터 동장은 “경창시장과 주민센터는 주민들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인데다가 주택가에 위치에 있어 다른 지역보다 착한소비 참여도가 높다”고 귀띔했다.
이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온 주민 이순길(67세)도 영수증 이벤트 참여차 주민센터를 찾았다. 이 씨는 “떡집에서 5만원을 선결제했더니, 주민센터에서 세제를 준다고 알려줬다”면서 “물건을 사면서 생필품을 무료로 받을 수 있고, 어려운 가게까지 도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이벤트 취지가 좋은 만큼 과일과 야채, 고기 등 자주 사는 품목 위주로 단골가게에서 선결제를 추가로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구청장 역시 자주 찾는 미용실과 집 앞 골목상점에서 선결제를 해두고, 차감하는 방식으로 서비스와 제품을 이용 중이다. “평소 같으면 한 달에 두 번 정도 뿌염(뿌리염색)을 하는데, 코로나19로 방역이 강화되면서 미용실 방문도 뜸해 지더라고요. 동네 미용실 사장님들께서 손님이 줄어 힘들다는 얘기를 하셔서 다음 방문 때 시술할 금액을 미리 지불했어요. 막상 결제를 하고 나면, 남은 잔액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달 꾸준히 가게 되네요.”
그는 “코로나19로 손님은 끊긴 소상공인들이 당장 임대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출 밖에 없다”면서 “우리의 소비로 소상공인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주시고, 이왕이면 단골가게에서 착한소비를 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