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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우버 드라이버 제이슨 루이스씨는 “수소차가 진짜로 있냐”고 반문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테슬라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주민답게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는 “전기자동차가 대세다. 단연 테슬라다. 나도 우버는 그랜드 체로키로 운행하지만 집에서는 테슬라 ‘모델3’를 탄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2040년 수소차 세계 1위(내수290만대, 수출 330만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문제는 미국이 수소충전소 등 수소차 운행을 위한 인프라를 언제, 얼마나 구축하느냐에 따라 수소차 시장의 성패가 갈린다는 점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야심작 넥쏘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모델3를 넘어설 수 있느냐도 결국 인프라 구축에 달렸다는 얘기다.
◇수소차, 한달 임대료 35만원에 연료비는 무상지원
“연료비가 공짜인데다, 한 달에 임대(리스)료 290달러(약 34만8000원)만 내면 되요.”
로스앤젤레스 헐리우드 인근 수소충전소에서 도요타사의 수소차 미라이에 수소연료를 채우고 있던 데이비드 로페스씨는 왜 수소차를 타냐는 질문에 “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도요타 미라이는 3년 간 리스비 1만440달러(약 1250만원)만 내면 탈 수 있다. 심지어 연료비도 공짜다. 현대 수소차 넥쏘 역시 구매·리스 고객에게 최고 1만3000달러(약 1560만원)까지 수소 충전비용을 지원한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친환경차 보조금 5000달러(약 600만원)까지 합치면 2000만원 이상 절약할 수 있다.
로페스씨는 “미라이는 6만달러(약 7200만원)짜리 차지만 모두 3년짜리 리스로만 탄다”며 “이 기간동안 도요타에서 가스비와 유지·점검 등을 공짜로 지원한다. 리스비 290달러 외엔 특별히 들어가는 돈이 없다”고 전했다. 로페스씨는 “3년치 수소연료 충전용으로 1만5000달러짜리(약 1800만원) 카드도 준다”고 귀띔했다.
그는 “시내에 수소충전소가 여럿 있어서 이용에 불편을 느낀 적은 없다”며 “전기차와 달리 연료를 채우는데 5~10분밖게 걸리지 않아 기다릴 필요가 거의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수소 충전소 옆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토머스 에르난데스씨는 “하루에 평균 25~30대 차량이 충전하러 온다. 도요타, 혼다, 현대차 세 브랜드가 전부다”라고 전했다. 로스앤젤레스 외곽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수소충전소 관리자는 “하루에 보통 80대 정도가 충전하러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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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전기차가 먼저 입지를 굳혔다. 전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해온 테슬라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데다, 자국 브랜드라는 점이 미국 소비자들의 선호를 이끌어냈다.
연방정부의 전기차 우선 정책도 한 몫을 했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인 2003년 중동 산유국으로부터 자립하겠다며 수소연료계획(Hydrogen-fuel initiative)를 발표했다. 2020년까지 수소차 상용화를 목표로 12억달러를 투자하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연간 1억6900만달러씩 투입되던 관련 예산을 6820만달러로 대폭 삭감했다. 먼 미래에 필요한 기술보다는 당장 필요한 에너지 절감 정책에 먼저 돈을 써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셰일오일이 급부상하면서 자원 고갈 우려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자연스럽게 수소차에 대한 관심을 멀어졌고, 그사이 머스크 CEO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은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차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내 수소차 생태계도 꾸준히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수소 충전소 등 인프라가 활발히 구축되고 있고, 수소차 판매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미국에는 현재 총 43개의 수소 충전소가 있다. 캘리포니아주가 40개로 가장 많고, 동북부 지역에 2개, 하와이에 1개가 각각 설치돼 있다. 27개(캘리포니아주 22개, 동북부 5개)는 현재 건설중이다.
미국에서 판매·리스된 수소차는 지난 1일 기준으로 총 7271대다. 2015년까지만 해도 115대에 불과했지만 2016년(1082대), 2017년(2298대), 2018년(2368대) 등 매년 증가세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수소차 보급에 앞장 서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오는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대, 충전소 1000개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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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친환경 정책과 관련, 캘리포니아주가 먼저 정책을 펼쳐 검증을 하고 나면 다른 주에서 상황에 맞게 도입하는 ‘클린에어액트’ 프로그램을 1970년대부터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팔리는 차량 10대 중 2대가 캘리포니아주 소재라는 것도 친환경 차량 시험대 역할을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1999년부터 캘리포니아연료전지 파트너십(CaFCP)도 수소차 생태계 조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도요타, 벤츠, 제너럴모터스(GM) 등 자동차 제조업체 7곳과 에너지 기업인 쉘이 미국 연방정부 및 주정부와 손잡고 친환경 산업을 육성 중이다. 수소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겐 5000달러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또 수소 충전소 설치 업체에게는 충전소 가동률이 70%에 달할 때까지 연간 10만달러를 최장 3년 동안 지원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수소차 운전자들은 한목소리로 수소차의 가장 큰 장점으로 고속도로의 ‘다인승 차량 전용차선(HOV 레인·카풀 레인)’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들은 “로스앤젤레스의 출퇴근 시간대 도로는 지옥”이라며 “혼자 탑승해도 카풀 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부족한 인프라는 여전히 캘리포니아주가 풀어야 할 난제다. 충전소 한 곳을 짓는 비용이 100만~120만달러(약 12억~14억원) 든다는 점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수소차 운전자인 에리카 잭슨씨는 “한 번 출근 시간에 인근 수소충전소가 고장나서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직장까지 30마일이 남아 있었고 남은 연료로 갈 수 있는 거리는 19마일이었다. 15마일 거리에 다른 충전소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일터에는 결국 늦게 도착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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