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흔드는 알고리즘]작은 우물에 물폭탄…메릴린치發 단타

최정희 기자I 2019.02.04 07:40:00

`한꺼번에 거래 주문하고 체결 안 되면 취소`
메릴린치發 거래비중, 코스닥선 3%대..`여전히 횡행`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동전주 중 주당 가격이 100원으로 가장 낮은 KD건설(044180)은 지난달 7일 장중 13%대나 급등했으나 8%대 상승에 그쳤다. 그 다음 날인 8일엔 다시 4%대 하락했다. 106~117원을 중심으로 의미없는 등락이 반복되고 있다. 국일제지(078130)는 지난달 18일 장중 14%대 상승했으나 결국 3%대 오르는데 그쳤다. 다음 거래일인 21일에도 9% 올랐다. 그러나 22일엔 8%대 하락했다. 텔루스(196450)는 17일 장중 13%대 상승과 2%대 하락을 오갔다.

이들은 최근 한 달 간(2019년 1월 2~29일) 외국계 증권사 메릴린치를 통해 주문한 거래 중 거래량이 가장 많은 상위 종목이란 공통점이 있다. 특히 KD건설은 한 달 간 일 평균 거래량이 997만주에 불과할 정도로 거래량이 적은 종목이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HTS(홈트레이딩시스템) 매수 상위, 매도 상위에 `메릴린치`가 뜨면 일단 피하라`는 얘기가 나온다. 메릴린치를 칭하는 ‘멸치’란 은어까지 등장했다. 코스닥 시장내 거래가 많지 않은 종목에 메릴린치를 통한 주식 매수세를 보고 개인투자자들이 추격 매수를 해 주가가 오르면 해당 매물을 개인투자자한테 떠넘기고 빠르게 매도로 전환하는 매매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알고리즘에 의한 기계적 매매 방식이다. 이런 매매로 인해 메릴린치를 쫓아 주식을 매수했던 개인투자자만 주가 하락에 손실을 보는 사례들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출처: 코스콤)
◇ 조세피난처 헤지펀드로 추정..초단타보단 `단타`

메릴린치를 통해 이뤄지는 이런 식의 단타 매매는 버뮤다 등 조세피난처에 거처를 둔 글로벌 헤지펀드 등으로 추정된다. 퀀트 기법을 활용해 사전에 정해놓은 알고리즘에 따라 기계적 매매를 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매수와 매도간 스프레드가 벌어지면 샀다가 좁혀지면 파는 방식으로 금액 기준으로 한꺼번에 거래 주문이 이뤄지고 체결이 안 된 주문 건은 취소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메릴린치 창구를 통한 단타 매매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 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 단위로 이뤄지는 초단타 매매보단 매매 주기가 긴 단타 매매에 가깝단 분석이다. 주식 현물시장엔 0.3%의 증권거래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0.3%포인트 이상의 스프레드가 벌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메릴린치 창구를 통한 단타 매매는 작년 2분기까지 꾸준히 증가하다 최근 들어 소폭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릴린치로 들어오는 거래 주문이 모두 알고리즘에 의한 단타 매매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작년 2분기 전체 거래량(코스피, 코스닥 등 포함) 중 메릴린치 창구를 통한 거래량 비중은 2.28%로 전년동기(1.3%)보다 0.98%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다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작년 4분기엔 1.55%로 감소했다.

◇ “코스닥 소형주, 큰 자본이 휘저어”

그러나 코스닥 거래량만 떼어놓고 보면 메릴린치 창구를 통한 단타 매매 영향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코스닥 거래량 중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거래량의 비중은 작년 2분기 3.75%에서 소폭 둔화되긴 했으나 4분기 3.22% 수준에 달한다.

문제는 한꺼번에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기계적인 단타 매매가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은 코스닥 소형주에서도 벌어지고 있단 점이다. 평소엔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은 종목들이 메릴린치 창구로 대규모 거래 주문이 들어오면 하루에도 주가가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시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단 지적이다. 이로 인해 작년 8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메릴린치 고객들의 불공정거래행위 여부를 조사해야 한단 주장이 제기됐고 이에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가 모니터링에 나서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금감원과 거래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메릴린치 고객들의 매매 패턴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워낙 거래규모가 방대하기 때문에 조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메릴린치 고객들이 코스닥 내 작은 종목까지도 무차별적으로 매매하기 때문에 시장을 교란시킨다는 지적이 있다”면서도 “코스닥 작은 종목을 큰 자본이 휘저어버리는 문제가 있긴 하나 어디까지를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봐야할 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얘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중으로 보면 주가 방향성이 상실되거나 갑자기 종가가 달라져 개인투자자들이 단기 트레이딩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기계가 하는 매매는 한 번 수급이 꼬이면 하락에 하락을 부르는 이상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단기 위주의 직접 투자보다 간접 투자, 기업 본질가치에 의한 투자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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