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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냉장고에 꽁꽁 얼린 한 움큼의 남편 남편의 뺨을 개수대에 치대 본다 (중략)// 네년이 나를 떼어먹으니 그렇지/ 입이 있음 처먹지를 말든가’(‘경진이네-원룸’ 중)
직설적이면서도 묘하다. ‘만지겠다, 만지잖아, 만졌겠지만, 만졌구나’처럼 수많은 단어가 흩뿌려진(‘전의를 위한 변주’) 페이지를 넘기면, 글씨로 만든 집 모양(‘좁고 보다 비좁고 다소 간략하게’)이 나오는 등 다양한 시의 변주가 담겨 있다. ‘제37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인 ‘캣콜링’(민음사)의 단면이다. 시적 화자인 ‘경진’은 가부장제와 성추행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거칠게 조롱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니키 드 생팔 등 현대 여성미술가에게서 영감을 받은 시편을 미술작품처럼 배치하고 사진·그림·타이포그래피 등 시각적인 효과를 적극 활용했다.
고통과 폭력의 현장을 시로, 이미지로 분출한 이는 시인 이소호(33·본명 이경진)다. 이 시인은 “경진이를 둘러싼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며 “나에게 시는 사회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써내려가는 ‘대자보’ 같다”고 말했다.
△끔찍한 일상성 폭로한 ‘고백의 왕’
“내 의견을 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편인데 시를 통해서라면 이상한 용기가 생긴다. 교회를 다닐 때 아버지로 생각했던 목사님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신도들에게 폭력을 가했다고 하더라. 충격적이었다. 시에 나오는 아버지는 그 목사님을 떠올리며 썼다.”
제목 ‘캣콜링’은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식의 성희롱을 뜻하는 용어다. 지난해만큼 대한민국이 ‘성’에 민감했던 때도 없다. 문단 내 성폭력을 비롯해 사회 각지에서 터져 나온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주변에서도 그런 일을 겪었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그동안 곪아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과거의 상처도 끄집어내면서 고통스러웠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발설한다는 차원에서 ‘미투 운동’과 맞닿아 있다.”
△“언제든 용기 내서 시 쓸 것”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시 ‘우리는 낯선 사람의 눈빛이 무서워 서로가 서로를’(16~17쪽)은 글자가 흔들린 채 인쇄돼 있는데 2014년 11월 21일 동생 시진에게 프라이팬으로 얻어맞은 날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집했단다. 당시 강한 가격으로 인해 잠시 글자가 두 개로 겹쳐 보이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지인들이 인쇄가 잘못된 줄 알고 연락하기도 했다. 하하. 스무 살부터 동생과 자취를 했는데 자매간 격렬한 싸움이라든가 무례함을 느꼈던 조언 등이 소재가 됐다.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를 통해 독자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
광고회사를 3년 다녔고, 대학원 조교로도 2년 일했다. 시만 쓴 건 2년 째다. “내 안의 감정을 시로 분출하고 나면 쾌감을 느낀다. 사실 괴로운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가 될 때도 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을 썼지만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시’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시를 통해서라면 언제든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말을 써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