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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조선업계는 그야말로 맹추위를 견뎌낸 한해였다. 2015년 말 전세계 경기불황의 여파로 해운업은 침체일로를 걸었고, 그 여파는 조선업계에 ‘수주절벽’과 ‘일감절벽’으로 이어졌다. 임금동결과 인원감축, 조선소 가동중단 등 사업구조재편 등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조선업계를 덮쳤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조업업계 한켠에서는 온기가 조금씩 감돌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 등을 중심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이 확대되면서 LNG운반선 발주가 꾸준히 이어지며 국내 조선업계에 온기를 불어넣으며 2019년 새해를 기대케 한다.
“예년과 달리 새해 확연히 달라진 것은 다름아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직원들의 희망이에요. 새해도 여전히 어려운 한해가 되겠지만, 이같은 직원들의 열기는 더 뜨거워질 겁니다.” 현장 안내를 맡은 한 직원의 말처럼 실제로 새해를 여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는 여전히 불고 있는 구조조정 및 해양플랜트 불황의 칼바람과 최근 늘어난 수주로 인한 희망의 온기가 교차하고 있었다.
◇도크 가득 메운 LNG운반선…‘희망의 돛’ 올렸다
한낮의 햇볕을 맞으며 들어선 조선소 안은 바닷바람은 아랑곳 없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새해는 LNG운반선에서 희망을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실제로 현장에는 전세계로 향할 형형색색의 LNG운반선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발주된 17만4000㎥급 대형 LNG운반선 60척은 국내 조선 빅3가 모두 휩쓸었고, 대우조선해양은 이중 18척을 수주하며 단일조선소 최대 수주실적을 기록했다.
현장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 수주잔량은 총 40척으로, 현재 옥포조선소에서는 이중 19척을 건조 중”이라며 “각 선박이 건조되는대로 남은 21척이 계속 도크를 채우며 건조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옥포조선소에서는 현재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10척(수주잔량 27척), 초대형컨테이너선 1척(13척), 육상플랜트 1척(1척) 등 건조 작업이 한창이었다.
총 6개의 조선 도크(드라이도크 2개, 플로팅도크 4개) 중 가장 큰 규모를 갖춘 드라이도크 넘버1 앞 안벽에는 대우조선해양의 기술력을 과시할만한 선박들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바 있는 쇄빙 LNG운반선 2척은 올해 4월 완공을 목표로 마무리 건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대 크기인 2만2000TEU급 초대형컨테이너선이 1월 중 인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중 쇄빙 LNG운반선은 대우조선해양의 미래를 주도할 주요 선박으로 꼽힌다. 앞서 러시아는 2014년 야말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세계 최초 쇄빙 LNG운반선 1차 발주를 진행했고, 15척 모두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해 현재까지 8척을 인도했다. 조만간 진행될 2차 발주(15척 예상)에서도 성과가 기대되는만큼 LNG운반선 호재는 올해에도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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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운반선을 중심으로 확연한 수주 회복을 보이고 있지만, 조선업계는 여전히 완전한 회복을 논하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구조조정은 현재진행형이고, 이로 인해 불거진 젊고 유능한 인재 부족 현상과 노사간 불협화음은 풀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조선과 함께 주요 사업영역으로 꼽히는 해양플랜트는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옥포조선소에도 최근 몇년간 이어온 불황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크레인 등 시설물 곳곳에는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조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특히 LNG운반선 건조작업이 한창이던 드라이도크 넘버1 바로 앞 타워크레인에서는 신상기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장이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해양플랜트 불황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해양플랜트를 건조하는 헤비존에서는 2014년 수주한 카자흐스탄 TCO 프로젝트가 한창이었지만, 그 사이로 VLCC 건조에 사용할 블록 작업이 병행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TCO 프로젝트의 모듈들이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인도되면서 도크가 비기 시작했지만, 당초 올해 수주가 유력했던 로즈뱅크 프로젝트가 발주처 변경으로 내년으로 해를 넘기면서 해당 도크에 조선을 채워넣은 것이다.
헤비존 옆으로는 대우조선해양 유동성에 결정적 위기를 불러온 미인도 드릴십 5척이 정박해 있었다. 다행히 5척 중 4척((소난골 2척, 시드릴 2척)은 인도가 확정돼 옥포조선소를 떠날 날짜를 기다리고 있지만, 밴티지드릴링 1척은 여전히 주인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해양플랜트 불황의 그늘은 여전히 옥포조선소에 드리워진 셈이다.
옥포조선소를 모두 둘러본 직후 대우조선해양 노사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잠정합의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반가운 소식을 뒤로 하고 땅거미 진 옥포조선소를 나서며 점심에 만난 옥포동 한 식당 주인의 한숨어린 기대가 떠올랐다. 옥포동에서 12년째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식당 주인은 “2015년말부터 지금까지 계속 안좋아지고 있다. 한때 예약없이는 자리를 잡을 수도 없었는데 올해는 연말에도 20개 테이블 중 10개 테이블 예약도 안들어온다”며 “2018년부터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 주변에 상가를 접고 갈 데도 없던 사람들이 다시 문을 열 시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새해에는 조선업이 잘 돼서 직원들이 승진도 하고 성과급도 받고 해야 학원이며 식당들도 먹고 살텐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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