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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 믿고 대대적 투자..미국發 금융위기 직격탄에 창업주도 손들어

남궁민관 기자I 2018.03.07 05:00:00

위기 못 이겨낸 성동조선 15년史
2000년대 조선소 규모 대폭 확대
정상화위해 전문경영인 앞세웠지만
대부분 임기도 못채워..위기 심화

지난해 12월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 작업장이 텅 비어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성동조선해양은 창업자 정홍준 전 회장이 지난 2003년 1월 24일 성동기공이라는 이름으로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에 처음 설립했다. 이후 2004년 2월 28일 사명을 현재의 성동조선해양으로 바꾸고 그해 8월 그리스 마마라스(MARMARAS)로부터 9만3000DWT급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을 처음으로 수주하며 조선소로서의 역사를 시작했다.

당초 성동조선해양은 블록공장으로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지만 조선업계가 호황을 누리면서 2000년대 중반 대대적으로 조선소 규모를 확장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형 조선소들이 구비하고 있는 드라이도크가 아닌 플로팅도크를 중점적으로 가동한다. 즉 육상에서 선박을 건조한 뒤 바다에 띄우는 방식이다. 194만4000㎡(약 59만평) 규모 야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8만TLC급 플로팅도크를 가동하고 있다. 골리앗크레인은 450t, 700t, 750t, 900t을 보유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의 시련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후 글로벌 경기가 냉각된 이후부터 시작됐다. 창업주인 정홍준 전 회장은 2006년 유관홍 전 회장에서 경영을 맡겼다가 2009년 다시 회사를 이끌었지만 지속된 경기침체로 2010년 완전히 경영권을 포기했다.

2010년 8월 경영정상화 계획 이행 약정(자율협약)을 체결하고 주채권은행으로 수출입은행이 자리했다. 이후 전문경영인을 앞세워 경영정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지만 대부분의 대표이사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만했다.

2011년 8월 선임된 하성용 사장이 유일하게 2013년 4월까지 1년 반여의 임기를 채웠고 이어 자리한 김연신 사장은 1년2개월만인 2014년 6월 사임했다. 후임자인 정광석 사장은 단 6개월만에 돌연 사임했고 2015년 1월부터 구본익 부사장이 대표이사 직무권한대행을 맡았다. 2015년 12월 김철년 사장이 다시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며 그 역시 1년3개월만에 사임했고 현재는 대표이사 부재 상황을 이으며 오은상 부사장이 직무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주채권은행이 파악하고 있는 재무현황을 살펴보면 성동조선해양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부채총계는 2조5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향후 실적개선 가능성의 척도로 여겨지는 수주잔량 역시 5척(13만CGT)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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