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도권 지역 그린벨트 내 임야를 쪼개 파는 ‘기획부동산’이 다시 활개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얼마 전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서울·수도권 그린벨트 40곳을 풀어 주택 16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기획부동산의 토지 판촉 행위가 부쩍 잦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획부동산이란 토지를 대량으로 매입한 뒤 웃돈을 붙여 여러 필지로 쪼개 파는 업체를 말한다. 이들은 수도권 외곽 등지의 땅을 3.3㎡당 50만~70만원 선에서 팔면서 그린벨트가 해제되면 소액 투자를 통해 큰 차익을 남길 수 있다고 유혹한다.
문제는 이들이 그린벨트 해제 근거로 내세우는 정보가 터무니 없고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실제 시흥시 하중동 그린벨트의 경우 지난해 6월 시흥시가 투자설명회를 열면서 처음으로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이 언급된 곳이지만, 아직까지 개발계획조차 짜지 못하고 있다. 시흥시 관계자는 “그린벨트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개발계획부터 먼저 세워야 하는데 하중동 지역은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민간 투자자가 아직 없는 상태”라며 “하중동 일대가 정부가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향후 발표하겠다고 한 신규 택지지구에 포함될 지도 우리 소관이 아니라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부동산들은 이미 발표된 경기도 성남·의왕·구리시 등은 물론이고 아직 발표가 나오지 않은 수도권 인근 지역까지 “그린벨트 해제 발표가 나면 땅값이 몇 배, 몇십 배는 오를 것”이라며 토지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기획부동산업자들은 자신의 말에 힘을 실으려고 허위 직함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경매학원 대표인 박모는 자신을 ‘대한주택공사 간부’, ‘서울시뉴타운 투기방지대책 연구위원’, ‘서울교육대학교 교수(토지분석가)’ 등으로 속이며 토지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실제 확인 결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 등에는 그런 직함이 없고 서울교육대학원 역시 “본원에는 부동산학과 또는 토지 최고위 과정 등이 일체 개설돼 있지 않다”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가 설사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투자자들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구제받기는 쉽지 않다. 기획부동산이 시세보다 비싸게 땅을 팔았다고 해서 이 자체가 불법은 아니며 투자 판단과 여부는 투자자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법원은 2007년 충남 서천읍 일대 임야를 신도시 개발 예정지라고 팔아 시세 차익을 본 기획부동산 임직원들에 대해 “피고인(기획부동산)이 한 매수 권유 행위가 일반 상거래 관행과 신의칙에 비춰 정도를 벗어나거나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토지 투자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지, 친구 등도 투자할 것을 권유하는 이른바 ‘다단계’식 판매 방법은 더욱 피해자를 양산하고 처벌을 어렵게 하고 있다. 최근 기획부동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면 어머니가 기획부동산에서 영업직으로 근무했다고 소개한 한 피해자는 어머니가 월급 대신 아무 쓸모도 없는 땅을 받고 본인도 거금을 들여 공유지분에 투자했으며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토지 매매를 권유했다고 설명한다.
기획부동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7월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을 개정해 그린벨트 내 토지의 분할된 면적이 200㎡ 이상이어도 투기 목적 등으로 판단될 경우 필지 분할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시행령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의 조례 개정이 필요한데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게다가 필지 분할을 금지하더라도 공유지분 투자 등을 통해 여전히 기획부동산의 토지 매매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개발 등이 확정된 지역의 경우 부동산 매매 자체를 금지하는 토지 거래 제한 조치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