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KBS·MBC 기자는 광화문 앞 촛불시위 현장에서 쫓겨나곤 했다. MBC 기자는 사명을 가려야 할 정도였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시민들의 분노가 기자들에 표출된 것이다.
23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최순실 사태, 언론 보도를 논하다’ 긴급 세미나에서 지상파 기자와 종편·한겨레 기자 간 표정은 극명하게 달랐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주도한 TV조선과 JTBC, 한겨레 기자들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제보에서부터 기사화 시점까지 덤덤하게 서술했다. KBS·MBC 기자들은 자괴감과 침통함을 숨기지 못했다.
세미나 자리에 함께한 언론학자들도 TV조선과 한겨레, JTBC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지난 7월 TV조선의 첫 보도로 시작한 최순실 게이트가 한겨레와 JTBC를 거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TV조선 이진동 사회부장, 한겨레신문 김의겸 국장, JTBC 김명원 탐사제작팀장이 나와 특종 발굴과 보도 과정을 전했다. 지상파 측에서는 KBS 정수영 기자, MBC 이호찬 기자가 나왔다. 청중이 사회자를 바라봤을 때 왼쪽에는 TV조선, 한겨레, JTBC 기자가 앉았고 오른쪽에는 지상파 기자들이 자리했다.
|
이 부장은 최순실과 갈등을 빚게 된 고영태 씨와 만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주변 실세를 포착했다. 그는 이후 1년여간 고 씨와 수 차례 만나면서 밑그림을 그렸다. 그는 “보통은 작은 것을 취재하면서 실체에 다가가지만, 이번 건은 정점을 미리 알고 그 정점에 맞춰 아이템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고 전했다. 최순실을 등장시키기 위한 여건 마련을 위해 주변 아이템부터 보도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후 청와대와 조선일보 간 갈등으로 주춤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한겨레신문이었다. 김의겸 한겨레신문 국장은 “처음 관심사는 미르가 아니라 우병우였다”며 “한 취재원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의 중요성을 알려줬고 그때부터 취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국장도 이 부장과 마찬가지로 역취재 방식으로 최순실이란 존재를 드러냈다. 최순실이 사적 관계에 있는 인사들을 공직에 영입했던 사실을 차례로 보도했다.
결정적인 특종은 JTBC에서 나왔다. 태블릿PC에서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했던 증거들이 나오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퍼즐이 맞춰지게 된 것. 김명원 JTBC 탐사제작 팀장은 최 씨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 간 40년 묵은 관계를 파헤쳤다. 박근혜 대통령 측근 최순실의 권력형 비리는 최태민 후손들의 국가 이권 개입으로 확대됐다.
이들은 1년여가 넘는 시간을 최순실 게이트 취재에 투자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는 때까지 계속해서 보도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언론학자들은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이들의 보도가 아니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함과 박 대통령을 둘러싼 최 씨 일가의 비리가 묻혔을 뻔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반면 KBS와 MBC 기자는 침통했다. 이들 기자들은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묵살과 뒷북, 물타기로 일관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주도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자리한 두 기자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기자협회상을 수차례 받은 기자들이다. 보도에 있어서만큼은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더 컸다.
KBS 보도본부를 대신해서 나온 정수영 기자는 “결론만 얘기하자면 JTBC와 TV조선의 보도와 비교해 양적 질적으로 부족했다”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 KBS는 묵살, 뒷북, 물타기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정 기자는 KBS 내부 언론노조 노동조합 공정방송 감시 역할 간사를 맡고 있다.
정 기자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총파업을 준비 중에 있고 기자 총회와 보도국장 사퇴 촉구를 위한 결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PD들도 촛불집회에 대한 특별 생방송 요구를 했고 이번주 토요일 촛불집회는 특별 편성 토론으로 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호찬 MBC 기자는 “지난 10년간의 MBC를 돌아보면서 착잡한 것을 많이 느꼈다”며 “공영방송의 문제점을 전국민이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왔다”고 운을 뗐다. 이 기자는 “MBC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아무것도 안했다”며 “묵살하고 침묵한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2012년 170일간의 파업 이후 MBC 내부 DNA가 바뀌고 안에서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이 쫓겨나 국정 농단 사태를 보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높지만 그것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사실상 전무하다”며 “경영진에 저항해서 피 흘리는 것 외에는 저항할 방법이 없다”고 한탄했다.
이어 “KBS와 MBC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제기마저 있을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강상현 연세대 교수는 “KBS와 MBC가 경영진의 전횡으로 파행을 계속하고 있다”며 “이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이사회인데 오히려 경영진의 방패막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지배 구조 개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논의가 지체되고 있다”며 “전반적인 흐름의 개선이 물꼬를 트이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