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대환 칼럼니스트] 국제 유가가 마냥 올라가기만 한다. 달러화 가치 하락이 한 가지 이유이긴 하지만 달러화 가치 변화를 고려하더라도 국제 유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혹자는 유가 상승의 이유를 이라크에서 찾는다. 이라크 정세 불안과 이로 인한 원유 공급의 불확실성이 유가를 상승시킨다는 해석이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당시 석유 전문가들은 열심히 계산을 했었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고 중동이 바로 안정을 찾으면 국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선, 전쟁은 단기간에 끝나지만 이라크의 원유공급이 바로 재개되지 않으면 유가는 40달러선, 전쟁이 장기화되면 유가는 50달러선이 될 것이라는 세가지의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그리고 이 세가지 시나리오 중 마지막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전쟁은 그런대로 단기간에 끝났고, 이라크의 원유생산설비도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첫 번째 시나리오대로다. 그런데 원유는 30달러대도, 40달러대도, 50달러대도 아니다. 60달러를 넘어서 70 달러 대까지 치솟았다.
이라크 뿐만 아니라 이란의 핵 문제 등으로 인한 중동 전반의 불안정성, 나이지리아와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불안정도 유가 상승의 이유로 제시된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석유수요를 크게 늘렸다는 것도 종종 이유로 지목된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성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베네주엘라와 나이지리아의 정세가 불안한 것도 새로울 게 없고, 이란의 핵 문제도 쇼크로 보기에는 힘들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원유 공급이 구조적으로 제한돼 있다는 점에 주목, 유가 상승은 장기적 추세라고 말한다. 새로운 유전이 개발되지도 않고, 산유국이 원유 생산량을 늘릴 의지도 이유도 없는데다 수요는 계속 늘어나기만 하니, 유가 상승은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원유 수입국들이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것은 유가 상승세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두려움이 현재의 유가 상승세를 가속화 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유 수입국 입장에서는 고유가에 대비한 에너지 정책이라고 해 봐야 별로 새로울 게 없다. 유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원유 공급량을 늘리거나 석유 소비량을 줄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원유 공급량은 산유국이 결정하는 것이니, 원유 수입국 입장에서는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그런데 150년 정도 시계를 뒤로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미국은 19세기 중반, 정확히는 1867년에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구매했다. 가격은 당시 돈으로 720만 달러. 현재 가치로 치면 이 액수의 열배 정도 된다고 하는데, 알래스카의 크기에 비하면 사실 돈도 아니다.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팔아치운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 2세는 물론 알래스카가 엄청난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면 아마 안 팔았았을 것이고, 팔더라도 훨씬 높은 값에 팔았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구매자인 미국도 알래스카에 뭐가 있는지를 모르고 샀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 앤드류 존슨은 알래스카 같이 ‘쓸데 없는’ 영토 구매에 720만 달러를 낭비했다고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720만 달러가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 쓸모 없는 영토를 받으면서 돈을 낼 필요가 뭐 있냐는 비난이었다.
알래스카의 천연자원에 관심이 없었다면 왜 사들였는지가 좀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다. 캘리포니아 등 태평양 연안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멕시코와 전쟁까지 벌인 게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물론 전쟁의 명분은 멕시코에 있는 독재자를 응징한다는 것이었으니, 영토확장은 그냥 전쟁의 부산물이라고 보아 줄 수도 있다. 어쨌건 태평양 연안을 대부분 차지한 김에 알래스카까지 가자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하다.
150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혜안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720만 달러를 내고 알래스카를 사들였더라면, 지금 고유가에 대비한 에너지 정책을 걱정하는 대신 넘쳐나는 국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부질없는 상상이다. 유가가 오르는데 별 대책 없이 ‘당하기만’ 해야 한다는 게 조금 답답해서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것 같다. 또 작은 섬 하나를 놓고 한일간 갈등이 고조되는 모습을 보며 ‘150년 전 알래스카를 사 뒀더라면 지금 독도에 대해 일본이 시비거는 것에 좀 더 의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