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도 위법 수집 증거로 무죄[검찰 왜그래]

박정수 기자I 2024.02.18 09:09:09

‘횡령·증거인멸’ 김태한 전 삼바 대표 ‘무죄’
“檢 증거 위법”…이재용 회장 이어 연달아 증거 불발
어디까지 위법 수집 증거인지…檢·法 줄다리기
“대부분 디지털 증거…法 뚜렷한 기준 있어야”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상장 과정에서 회삿돈을 횡령하고 분식회계를 은폐하기 위한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태한 전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특히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압수수색하면서 전자정보 선별절차 등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아 확보한 증거들이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재판부는 지적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 재판에서 증거로 활용되지 못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 압수물이 김 전 대표 사건에서도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횡령과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사진=뉴시스)
◇ “檢 위법수집 증거”…김태한·안중현 무죄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과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함께 기소된 안중현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전 삼성전자 부사장)도 무죄를 받았습니다. 다만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사장(경영지원센터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김 전 대표 등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회삿돈 47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20년 10월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2016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한 이후 회사 주식을 수차례 사들이면서 우리사주 공모가와의 차액을 현금으로 챙겨 김 전 대표와 김 부사장이 각각 36억원과 11억원 상당 횡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2018년 5월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회계사기 혐의가 인정된다’며 행정제재를 예고하자, 검찰 수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보유한 관련 자료들을 삭제할 것을 임직원에게 교사한 혐의도 받습니다.

검찰이 의심하는 증거는 2019년 5월 압수수색 당시 삼바 공장과 회의실 내 엑세스 플로어에서 발견된 18TB 용량의 백업 서버 등입니다. 엑세스 플로어는 바닥재 아래 전선 등을 보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중 바닥구조를 말하는데, 검찰은 압수수색 진행 도중 회의실 등에 설치된 엑세스 플로어에서 메인 및 백업 서버와 외장하드 2대, 업무용 PC 26대 등을 발견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전 대표와 안 전 부사장에게는 횡령과 증거인멸 교사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압수한 증거 가운데 혐의사실과 관련한 것만 선별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압수한 일부 증거는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과 관련성이 없었다는 재판부는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주된 증거인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노트북과 서버 등이 증거 능력이 없어 유죄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며 “다른 임원들에게도 차액보상을 통해 임직원과 형평을 맞추기 위한 점을 고려하면 횡령 고의나 불법영득의사를 갖고 실현하기 위한 행위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
◇ 디지털 증거 놓고…檢·法 줄다리기

형사소송법(제308조의2)을 보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위법수집증거의 배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수사기관이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 영장 없이 압수수색해서 취득한 증거, 강압을 통해서 획득한 증거는 모두 증거로 쓸 수가 없습니다.

형사사법체계에서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에 증거가 명백하게 나왔다고 해도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면 증거로 쓸 수 없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디지털 증거가 많은 만큼 위법수집 증거의 배제에 뚜렷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우리나라 위법 수집 증거와 관련된 관행이 현재 형성되고 있는 과정이라 법원이 어디까지를 위법 수집 증거로 보는지가 확정적으로 합의된 게 없다”며 “어디까지 위법 증거로 보고 어디까지 합법적인 증거로 보는지에 대한 선례가 축적이 안 돼 있다”고 했습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특히 요즘은 웬만하면 다 디지털 증거”라며 “검찰 입장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으면서 수색 장소 등을 정확하게 특정해야 하는데 디지털 증거들을 정확하게 특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포괄적인 압수수색 영장은 요새 법원에서 내주지 않는 분위기라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에 기타 범죄와 관련 있는 물건 등이라고 기재할 경우 판사들은 기타 부분을 영장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물론 수사가 꼭 필요한 부분만 영장에 기재해야 한다는 법원 입장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상 위법수집증거 배제는 이해가 간다”며 “하지만 이론적인 상황과 실무적인 상황이 최근에는 많이 다르다. 디지털 증거가 많은 최근 범죄 특성을 실무적으로 법원에서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과거 위법 수집 증거라 하더라도 증거 능력은 있되 증명력을 낮추자 그런 차원이었는데 아예 증거 능력을 배제한 쪽으로 형사소송법이 바뀐 지가 오래되지 않았다”며 “최근 압수수색 절차를 엄격하게 보고 있고 그런 엄격한 절차에 따라 압수수색이 진행되면 점차 증거 능력 논란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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