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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규제 철폐는 정부만의 몫일까

김영환 기자I 2023.10.16 06:00: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해석이 인공지능(AI) 시대에 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 취재원에게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다. 지금까지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면 그 개발과 발전을 막는 걸림돌로 정부부처의 규제만을 생각하기 쉽다. 과거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규제 철폐’를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도 그 때문일 터다.

단적인 예가 바로 초상권 보호다. 방송이나 신문 등 다양한 언론매체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군중이 밀집된 곳을 촬영할 때 주인공이 아닌 주변부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뿌옇게 ‘블러’ 처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우리나라 현행법은 개인은 동의 없는 촬영 당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고 개인의 동의 없이는 언론에서도 보도할 수 없다. 방송국 PD로 재직 중인 한 후배는 “요즘은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동의를 얻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냥 블러 처리를 하는 게 대세”라고 전했다.

미국은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보호를 다르게 인식한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공간, 이를테면 내 집에 침입자가 들어왔다거나 영상을 촬영하는 데 대해서는 강하게 방어한다. 내 집 마당에 낯선 사람이 들어왔을 때 스스럼없이 총기를 꺼내 드는 나라가 미국이다. 반면 공공의 성격이 짙은 장소에서 촬영된 자신의 모습에는 둔감하다. 공공장소에 나왔기 때문에 자신의 초상권을 주장하지 않고 법적인 해석도 그렇다.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의 미세한 차이는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술에서 성큼 앞서 갈 수 있는 하나의 배경이 됐다. 최근 자율주행 기술은 인간의 표정을 분석해 주행정보로 활용한다. 예컨대 웃으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돌발적으로 도로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반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차도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방어운전을 생각하며 감속을 해야 한다. 앞차의 속도, 신호등의 색깔 등 기본 주행 정보를 넘어 보행자의 표정도 자율주행의 정보가 되는 것이다.

한국도 ‘미래차 산업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로를 지나며 보행자들을 촬영할 수 있게 됐지만 이를 저장할 때 모두 블러 처리를 해야 한다.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기업들은 미국과 다르게 보행자의 표정 분석은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비단 자율주행뿐 아니다. 거대언어모델 ‘LLM’만 해도 그렇다.

이메일이나 메신저이 아닌 모두가 접근 가능한 인터넷 게시물은 오프라인의 공공장소와 같다. 이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나열해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챗GPT’가 나왔고 ‘바드’가 나왔다.

한국은 접근 가능한 웹페이지조차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면 금지 팝업이 뜬다. 그나마 한국어 사용자들이 몰리는 네이버 서비스인 블로그, 카페, 뉴스 등이 있었기에 ‘클로바X’가 나올 수 있었지만 클로바X는 한국어 특화 서비스란 인상이 짙다. 번역이 되지 않은 노벨상 수상자의 논문을 클로바X가 학습하기란 쉽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규제를 없애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규제철폐’가 아니라 ‘규제뽀개기’라 이름 짓고 대대적인 규제 혁파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혁파할 수 있는 규제는 어디까지일까. 개인정보보호에 더 큰 비중을 둔 우리 사회의 합의는 정부의 규제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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