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체적으로 원심판결 가운데 업무방해 부분에 관한 검사의 상고는 기각하고, 일부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부분에 관한 검사의 상고는 인용했다. 이에 업무방해 부분에 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고,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부분에 관해서는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유죄 부분과 함께 파기·환송했다.
A씨는 성명불상자와 공모해 유령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계좌에 연결된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유한회사 A와 유한회사 B를 설립했다. 이후 2020년 8월 20일과 21일 각 유한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가장해 사업자등록증 등 법인 명의 계좌의 개설에 필요한 서류를 피해 금융기관들의 각 담당직원에게 제출하면서 법인 명의 계좌 개설을 신청했다.
A씨는 그 과정에서 담당직원으로부터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등의 안내를 받고 이를 준수할 것처럼 행세했고, 피고인의 기망에 속은 피해 금융기관들의 각 담당직원은 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줬다. 이로써 피고인은 위계의 방법으로 4회에 걸쳐 피해 금융기관들의 계좌 개설업무를 방해했다.
이어 A씨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2020년 12월 29일 유한회사 A 명의의 부산은행 계좌와 새마을금고 계좌에 각 연결된 현금카드와 OTP기기를, 2021년 1월 4일에도 위 회사 명의 기업은행 계좌에 연결된 현금카드와 OTP기기를 고속버스 택배를 통해 성명불상자에게 보내 이를 각 대여했다. 또 2021년 2월 3일 유한회사 B 명의의 부산은행 계좌에 연결된 현금카드, OTP기기를 성명불상자에게 건네주어 이를 대여했다.
A씨는 성명불상자로부터 지시를 받고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2021년 4월 13일 서울역의 물품보관함에 들어 있는 윤모씨 명의 국민은행 체크카드 1장과 김모씨 명의 우체국 체크카드 1장을 수거해 보관했다.
1심에서는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총 4회에 걸쳐 이른바 유령법인의 계좌 개설을 신청해 피해자 은행들의 계좌 개설 업무를 방해했다”며 “대가를 수수하고 위와 같이 개설한 계좌의 현금카드 등 접근매체를 성명불상자에게 전달하는 등 범행내용에 비춰 죄책이 무겁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가 불법적인 사실을 잘 알면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 피고인이 대여한 접근매체가 실제로 보이스피싱 등 사기 범행에 이용되기도 한 점 등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2심에서는 업무방해 부분과 전자금융거래법위반 일부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 금융기관들의 담당직원에게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등에 관해 서면으로 허위의 답변을 기재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해 이를 믿은 담당직원들이 회사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주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해 금융기관들의 계좌 개설업무가 방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접근매체를 대여·보관한 행위로 인한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부분 공소 사실에는 피고인이 인식한 이용될 범죄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면서 “피고인이 보관한 체크카드는 경찰의 수사협조자가 대포통장 등 접근매체 수거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어서 실제 범죄에 직접 사용되거나 범죄의 수행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없음이 분명해 범죄로 되지 않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고 설명했다.
|
특히나 대법원은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단순히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기재된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의 요구 등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그 계좌개설은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라며 “계좌개설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접근매체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에 이용될 것을 인식했다면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다’고 볼 수 있다”며 “접근매체를 이용해 저질러지는 범죄의 내용이나 저촉되는 형벌법규, 죄명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인식은 미필적 인식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는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등의 행위를 할 당시 피고인이 가지고 있던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고, 거래 상대방이 접근매체를 범죄에 이용할 의사가 있었는지 또는 피고인이 인식한 것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최초로 명시한 판결”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