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관리위원회 간부들의 ‘자녀채용비리’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가운데 선관위가 뒤늦게 내부혁신 및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쇄신의지가 있는지 의심된다. 조직 전체가 이미 비리집단으로 몰렸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노태악 선거관리위원장은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고 조직내 비리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간부들도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꼬리자르기 면피용 쇄신책으로 일단 소나기부터 피하고 보자는 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확인된 선관위 간부와 직원들의 자녀 특별채용 사례는 최소 10건이다. 전수조사가 본격 진행되면 비리건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노 위원장은 31일 비리 연루 간부 4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결정했다. 그러나 범죄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 의뢰는 쇄신안이라기보다 당연한 조치다. 외부기관과 합동으로 전·현직 직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이고 인사채용 쇄신안도 따로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감사원 주도의 전수조사나 직무감사는 대놓고 거부했다. 생색내기용 대책이라는 비판이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 집단 비리의 원인을 제도와 시스템 탓으로만 돌리려는 의도는 아닌지 우려된다. 선관위 비리는 유독 문재인 정부 시절 집중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선 캠프에서 일하던 조해주 특보를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꽂아넣은 이후 조직 내부는 정치적 줄대기가 만연하면서 기강이 무너지고 도덕불감증이 심화됐다. 이번 채용비리 문제 뿐 아니라 ‘소쿠리투표’나 편향적 선거 현수막 문구 논란 등 유독 문 정부 시절 선거부실과 정치 편향 논란이 심했던 건 이런 배경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시스템도 문제지만 인적 쇄신이 먼저다. 존립의 기본가치가 무너진 조직이라면 리더부터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밑바닥부터 뼈를 깎는 심정으로 환골탈태하는 게 순리다. 선관위 내 뿌리깊게 자리잡은 책임 회피 관행이 지금 노 위원장에게서 보인다. 노 위원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비리에 눈감았던 간부들도 대폭 물갈이해야 한다. 땜질 처방, 무늬만 쇄신책으로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조직을 정상화할 수 없다. 국민 신뢰를 잃은 선관위로 내년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