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탈을 쓰고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의 민낯을 보면 우리 사회에 안보경각심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알 수 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엊그제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각종 반국가 이적활동을 벌인 혐의에 대해 서울 민주노총 본부와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등 전국 10여 곳을 일제히 압수 수색했다. 민주노총은 ‘공안통치 부활’이라며 극렬히 반발했지만 법원이 압수 수색 영장을 모두 발부했다는 점에서 혐의는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조합원의 권리 신장 보다는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 노조 활동과 무관한 반미·반정부 투쟁에 주력해왔다. 지난해 8·15 자주평화통일대회에선 북한 조선직업총동맹 명의로 작성된 ‘련대사’를 낭독하고 전문을 웹사이트에 게시하는 등 노골적인 친북활동을 펼쳤다. 이 모든 배후에 북한의 지령이 있었다는 게 합리적 의심일 것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정권의 비호를 받고 조합원 100만명을 돌파한 국내 최대 노동단체가 북한의 대남 적화 야욕에 놀아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난 정부 내내 김정은의 ‘가짜 평화쇼’에 매달리면서 안보 불감증이 확산됐다. 종북세력들이 백주대낮에 주체사상을 외치고 김정은 찬양교육을 벌이는가 하면 최근 윤미향 의원 전 보좌관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서 볼 수 있듯 정치권까지 대남 공작요원들이 깊숙이 침투했다. 이번 사건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국정원이 민주노총 핵심 간부와 북한 공작원 접촉을 포착한 시점은 2017년이었지만 당시 국정원은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다며 사실상 수사를 뭉갠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간첩들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정작 대공수사능력은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민주당이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국가정보원법을 개정하면서 내년 1월부터 대공수사 기능이 경찰로 이관될 예정이다. 수십년간의 대공수사 노하우와 정보망을 가진 국정원에 비해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경찰에 대공수사 기능을 넘긴다는 건 안보자해 행위다.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능부터 복원할 일이다. 전 정권에서 간첩단 사건 결재를 회피하고 미룬 관련자들의 직무유기에 대해서도 낱낱이 진상을 밝혀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