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겸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10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날로 악화하는 무역수지 적자 해결책으로 수출 활력 제고를 꼽으며, “1998년 이후 수출 1위 품목으로 고착화된 반도체 의존을 줄이는 대신 중장기적으로 신(新) 주력품목을 창출하기 위한 규제혁파와 노동시장 개혁, 세제감면 등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반도체·백신·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최대 50%)과 중소기업(최대 25%) 위주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일반 산업(대기업 2%·중소기업 25%)으로 전면 확대해야 한다는 게 권 부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역할에 대해 “국내 대기업은 기업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127개의 규제를 추가로 적용받고 있는데, 제2, 제3의 반도체가 될 미래 먹거리 산업을 발굴하려면 정부는 ‘민간이 더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며 규제혁파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권 부회장은 윤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삼은 노동개혁과 관련,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언급하며 “기득권의 눈치를 보기보단, 노사문제 전문가에 맡겨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일관된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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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불황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대로 둔화할 전망이다. 투자·일자리·복지 등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경제위기 수준의 성장률이다. 그간 한국경제는 1998년 외환위기나 2009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등 초대형 충격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2%대 ‘성장 마지노선’을 지켜왔다. 투자 감소와 실업 증가 등 부정적 충격이 우려된다.
-무역수지 적자도 심각하다.
△여러 대내외 위기 요인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이다. 작년 무역수지 적자액은 472억달러로 1956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치다. 최근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이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와 상황이 유사하다. 국내 산업구조가 철강·조선·석유화학 등 중후장대 산업에 치우쳐 있어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 증가가 무역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이다. 글로벌 교역질서가 자국우선주의로 전환되면서 수출중심의 한국경제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수출 활력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출은 그동안 한국경제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해왔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자유무역협정(FTA) 등 경제영토를 확장해 2009년 -13.9%였던 수출 증가율이 2010년 28.3%로 올랐다. 코로나19 위기 때도 주요 수출품목을 고도화해 2020년 -5.5%에서 2021년 25.7%로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수출’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다면.
△규제혁파·노동시장 개혁·세제감면 등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중장기적으로 신(新) 주력품목을 창출하고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완화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10대 주력 수출품목도 반도체, 석유화학, 기계, 자동차, 석유제품, 철강, 선박, 차부품, 디스플레이, 컴퓨터로 동일하다. 신분야에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전면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또 해외자원개발 활성화 지원, 에너지 효율적 구조로의 산업재편 등 수입 의존도를 축소하기 위한 정책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이후 에너지 해외의존도 완화를 위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급감했다. 해외자원개발 지원예산이 2015년에는 3588억원이었으나 이듬해 952억원, 2019년 522억원으로 감소했다. 해외자원개발은 리스크가 높아 국가의 지원이 필수다. 바이오·첨단IT 등 신산업과 및 관광·의료 등 서비스업 경쟁력을 강화해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를 완화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신사업 분야 규제는 네거티브로 적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신산업 분야 규제에 ‘이것만 빼고 다하라’식의 네거티브 원칙을 적용해 2019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 맞다. 그러나 강제성 없는 권고수준이며 대부분의 규제는 기존 포지티브(이것만 하라) 방식이다. 세계적으로 업종 간 벽을 허무는 산업 융합 흐름이 점점 가속화되는 만큼 우리도 일단 규제를 풀어 신산업 창출을 장려하고 사후 관리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도 문제 아닌가.
△자율주행 등 미래혁신 분야는 상용화에 큰 비용이 들어 전세계 각국이 대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 정부만 중소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대기업을 배척하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경영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법률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내 대기업은 기업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127개의 규제를 추가로 적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자와 비교해 시가총액 등 규모가 작음에도 더 많은 규제를 달고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
-제2, 제3의 반도체가 안 보이는 이유도 규제 때문인가.
△미래 먹거리 산업을 발굴하려면 정부의 인위적 개입 대신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한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 지난 ‘서울 프리덤 포럼’에서 저명한 경제학자인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와 대담을 했는데, 당시 그는 “정부가 기본적인 기능 이상을 넘어서 과도하게 개입하려고 할 때 바로 문제가 생기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반도체 선진국이 된 것은 산업 태동기에 정부 내 반도체를 육성하는 ‘반도체과’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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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노동개혁 추진에 공감한다. 경제계 차원에서도 적극 협조할 것이다. 제가 경제협력기구(OECD) 대사를 지낼 때 세계경제포럼(WEF)·국제경영개발원(IMD) 등 국제기구는 한결같이 한국의 노동시장이 가장 경직적이고 한국의 노조가 가장 과격하고 호전적이라고 했다. 우리 기업들은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노조편향적 법·제도로 인해 시장에서 힘겹게 경쟁 중이다.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다. 2017년부터 작년까지 무리한 파업으로 인한 생산손실액은 9조5723억원에 달한다. 파업으로 인한 연간 근로손실일수는 38.7일로, 일본의 193.5배, 미국의 5.4배에 육박한다.
-노동개혁이 성공하려면.
△독일은 하르츠 개혁 이후 고용률이 올랐다. 2005년 65.5%였으나 2020년 76.2%로 상승했고 같은 기간 실업률은 11.3%에서 3.9%로 낮아졌다. 노동시장 경쟁력도 2005년 124위에서 2019년 39위로 상승했다.
-재계 일각에선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과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총수일가가 일정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나 자회사와의 거래를 규제하고 있는데, 이는 수직계열화에 따른 계열사 간 정상적 거래까지 위축시켜 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기업이 처한 상황이나 산업 특성에 따라 수직계열화나 아웃소싱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건 기업이 가장 효율적 구조를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만든다. 이 밖에도 대주주 의결권 3% 제한과 지주회사 규제도 전세계 유례가 없다. 대주주는 3%만 의결권을 행사하지만, 헤지펀드들은 지분 쪼개기로 보유지분을 모두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권을 위협받기 쉽다. 공정거래법상 신규 지주회사는 자·손회사가 상장사일 때 지분을 30% 이상, 비상장사인 경우 50% 이상 보유해야 하는데, 투자·고용에 투입해야 할 자금을 규제 순응에 소진하게 만들고 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서울대 경제학과 △美벤더빌트대 경제학 석사 △카스비즈니스스쿨 경영학 석사 △행정고시 19회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 △재정경제부 제2차관 △OECD 대표부 대사 △국무총리실장(장관급) △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