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형선 수주 독식한 ‘K-조선’…맞춤설계·친환경 기술 통했다

김정유 기자I 2021.03.30 05:00:34

1~2월 대형 컨선 84% 수주, 中에 압도적 격차 1위
환경규제 강화로 노후선 교체 수요↑…韓 ‘기회’
물동량 급증에 대형선 수요↑…선주 신뢰도도 높아
하반기도 수주랠리 기대, 중형 조선사 경쟁력도 높여야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올해 들어 조(兆) 단위의 대규모 수주 ‘잿팟’을 터뜨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써내려가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물동량이 급증하자 대형 컨테이너선 중심으로 발주가 크게 늘면서 국내 조선업체들에게 수주가 집중되고 있는 모습이다. 선주들의 요구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설계·건조 능력은 물론 친환경 선박 기술력까지 확보하면서 ‘K-조선’ 주가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해상 환경규제 강화 등 외부적인 영향까지 겹치면서 올해 국내 조선업체들의 수주 기회가 더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LNG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시운전하고 있다. (사진=한국조선해양)


◇올해 대형 컨선 25척 중 24척 韓 수주…“비싸더라도 韓 선택”

29일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1~2월 기준) 전 세계에서 발주한 1만TEU(20피트 컨테이너선 크기)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25척 중 21척(84%)을 수주하며 중국(4척)을 압도적인 격차로 눌렀다. 같은 기간 국내 조선업계의 전체 선박 수주량도 250만CGT(표준선환산톤수), 64척으로 중국(190만CGT, 85척), 일본(32만CGT, 14척)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특히 국내 조선업체들은 지난 2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7척, 아프라막스(A-MAX)급 5척 등 중대형 유조선 시장에서 발주된 12척 전량을 수주하기도 했다. 대형선 시장을 한 마디로 ‘싹쓸이’ 한 셈이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 같은 국내 조선업계의 선전은 최근 글로벌 조선시장을 둘러싼 환경과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친환경을 골자로 한 선박·해양환경 규제 강화로 노후선들의 교체 수요가 높아지면서 기술력이 높은 국내 조선업체들에게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 측면에서 보면 한·중·일 중 한국이 독보적인데, 선가에선 중국은 한국보다 대략 10~20% 싸고 일본은 비슷하다”며 “현재 선주들은 가격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확실한 친환경 선박을 도입하려는 수요가 높은 편이다. 맞춤 설계와 건조가 가능한 국내 조선업체들로 발주가 몰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움츠렸던 전 세계 물동량이 올해 본격적으로 풀리면서 대형선 수요가 늘은 점도 호재다.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컨테이너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물동량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많은 선주들이 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확대하고 있는데, 대형선에서 기술적 강점을 지닌 국내 조선업체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삼성중공업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수주도 당초엔 중국과 물량을 나눌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삼성중공업이 전량 다 가져가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도화된 기술력을 요구하는 대형선 발주는 과거 일본 조선사 대상으로 주로 이뤄졌는데, 최근 몇년새 한국이 해당 시장을 다 가져가는 모습”이라며 “고객맞춤형 설계 기술 등은 일본이 국내 조선업체들을 이기지 못한다. 선주 요구 조건을 다 맞춰주는 기술력 때문에 좀 비싸더라도 국내 조선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조선업계에 대한 선사들의 신뢰도도 매우 높은 편”이라며 “지난해 중국이 수주(프랑스 발주)했던 LNG추진 컨테이너선이 기술적인 문제로 수개월째 건조가 지연됐던 가운데 이보다 더 늦게 수주한 현대삼호중공업의 경우 제 시간에 배를 인도한 것도 이 같은 신뢰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사진=삼성중공업)


◇올해 수주 22% 성장 전망…단기 일감 확보 등 대응 필요

코로나19로 밀렸던 발주들이 연초부터 본격화한 만큼 2분기와 하반기에도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 랠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조선업계의 신조선 수주량과 수주액은 1000만CGT, 225억 달러로 전년대비 각각 22.2%, 23.1%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희망찬 전망에도 국내 조선업계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지난해 4분기부터 대규모 수주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오는 2023년 인도 물량인만큼 당장 내년 인도 물량이 부족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올 상반기에 내년도 인도 물량을 대거 수주하지 않으면 수주 호황에도 일감이 없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에도 올 1분기 만에 연간 목표치의 30% 수준의 수주 실적을 달성했지만 올해 연간 예상 매출은 4조8000억원으로 전년대비 30% 이상 낮춰 잡았다. 직전년도 수주 실적이 좋지 않은 결과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내년 인도물량을 대거 수주하지 않으면 내년 건조량은 800CGT 이하가 될 우려가 있고, 이는 2000년대 호황기 이후 최저점을 기록한 2018년 건조량과 유사한 수준”이라며 “이 같은 단기적 일감 부족은 업계에 있어 시황 호전을 앞두고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현명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형 조선사들의 구조 개편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현재 대규모 수주는 대형 조선업체들이 이끌고 있지만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 차원에선 중형 조선사들의 생존 기반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형 조선사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중형 조선시장 물량은 이미 모두 중국에게 빼앗겨 버려 많이 무너진 상황”이라며 “대규모 수주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조선산업 생태계를 위해 중형 조선사들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국적선사 HMM에 인도한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사진=대우조선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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