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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만난 배지수, 박한수 지놈앤컴퍼니 공동대표는 “미생물로 암을 잡을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말하는 미생물은 우리 몸에 사는 ‘인체공생미생물’로 영어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한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100조개가 넘는다.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세포보다 10배나 많은 수치. 몸무게의 약 3%는 이들 미생물의 무게다. 과거에는 ‘장운동에 도움이 된다’ 정도의 막연한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특정 미생물의 특정 염기서열이 특정 질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 그래서 비만이나 당뇨병 등 내분비질환을 비롯해 우울증이나 치매 등 정신질환, 심지어는 암과의 연관성까지 밝혀지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2014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미래 유망 10대 기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최근 항암제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는 분야가 면역항암제와 마이크로바이옴을 병용하는 것이다. 면역항암제가 약으로 인체의 면역신호를 증강시킨다면,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로 이 신호를 키운다.
지놈앤컴퍼니는 서울의대 동기인 배지수, 박한수 대표가 2015년 설립했다. 배 대표는 의대 졸업후 미국에서 MBA를 하며 경영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박 대표는 환자 진료 대신 생화학 기초연구에 집중했다. 각자의 길을 가던 둘은 2015년 의기투합해 마이크로바이옴을 개발하는 지놈앤컴퍼니를 세웠다. 박 대표의 연구 아이디어를 배 대표가 상용화하는 셈. 지놈앤컴퍼니는 특정 암을 치료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아니라 암을 물리치는 면역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한다.
박 대표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며 “인터루킨 등 면역인자의 양을 늘릴 수 있도록 인체 내 환경을 바꿔주면 면역력이 올라가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체 내 면역환경은 암을 이겨내는 것 뿐 아니라 항암제의 효과를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박 대표는 “같은 암이라도 항암제가 잘 듣는 환자와 항암제가 소용 없는 환자로 나뉘는 원인 중 하나가 유익균 분포와 양의 차이”라며 “유익균이 많은 암환자들은 항암제가 잘 듣기 때문에 유익균을 늘리는 게 마이크로바이옴 항암제의 핵심 개념”이라고 말했다.
지놈앤컴퍼니는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마이크로바이옴 항암제 임상시험 승인을 위한 사전미팅을 신청했다. 폐암·흑색종·대장암에 대한 마이크로바이옴 항암제 임상시험으로 2월부터 FDA와 미팅을 진행해 이르면 올해 안에 임상시험에 돌입하는 게 목표다. 배 대표는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는 글로벌 제약업계가 아직 개척하지 않은 분야”라며 “이들은 마이크로바이옴을 직접 연구·개발(R&D) 하지는 않지만 마이크로바이옴에 특화한 벤처기업들의 연구성과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놈앤컴퍼니와 유사한 방식의 항암 마이크로바이옴 경쟁사로는 베단타와 이벨로(이상 미국), 4D파마(영국) 등이 있다. 배 대표는 “우리를 포함해 이들 경쟁업체들은 연구하는 미생물의 종류만 다를 뿐 연구 수준은 서로 엇비슷하다”고 말했다.
지놈앤컴퍼니는 지난 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20여건에 이르는 미팅을 진행했다. 배 대표는 “면역항암제와 마이크로바이옴의 병용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안받는 등 진척이 있었다”며 “기술이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있었던 만큼 조만간 좋은 성과를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