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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잔잔한 파도 건너편에 배 한 척이 보인다. 두루뭉술한 산세가 먼저 잡히고, 뒤이어 돌무더기 쌓인 언덕에 초록을 잃지 않은 나무도 잡힌다. 적막하지만 고독하진 않다. 정중동. 조용하지만 꾸준히 움직이고 있어서다. ‘모항’(2017)이다. 작품명대로 따라나선다면 충남 태안 만리포 끝자락 어디에 이를 터.
장면을 바꾸면 이번엔 보령의 ‘무창포’(2016)다. 여기선 또 다른 바다가 보인다. 무리지은 갈매기가 해변에서 망중한이다. 바다세상을 보고 있는지 사람세상을 보고 있는지 제 몸 따라 시선도 제각각이다.
흐트러진 윤곽, 부드러운 질감이 빚어낸 아련한 형상. 이는 순전히 수채기법 덕이다. 캔버스를 뚫을 듯 날렵한 붓선이나 울퉁불퉁한 마티에르를 포기한 대신 화면 전체를 촉촉히 적시는 감성을 얻었다.
중견화가 권찬희(54)가 전북 군산시 새만금북로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여정스토리’란 테마로 개인전을 열었다. ‘모항’ ‘무창포’를 비롯해 ‘신안-함초’(2017), ‘죽도 산방에서’(2016) 등 바다언저리 풍경과 ‘여정-밤의 여신’(2017), ‘여정-여름’(2017) 등 꽃무더기가 어우러진 산 전경 등으로 구성한 30점을 걸었다. 하나같이 고즈넉한 전망을 꺼내놓고 추억을 되짚게 하는 수채화다. 개인전으론 아홉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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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작가는 작품세계의 중심에 자연을 둔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간 짧고 강렬한 여행에서 가져온 ‘자연과의 교감’을 주제어로 삼았다. 굳이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아도 작품마다 삶을 향한 애정이 물씬 배어나는 건 바로 그 교감을 직조해낸 덕이다.
투명한 톤이 작가의 장기다. 맑은 색감이 생명인 수채화의 무기가 된 셈이다. 그렇게 소박하지만 강렬한, 담백하지만 절절한 정서가 뚝뚝 떨어지는 여린 그림을 완성한다.
어린 미술지망생을 가르치는 틈틈이 출품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권 작가를 먼저 알아봤다. 특선·입상 등 수상작 리스트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전주·익산·군산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역작가로서의 역할도 단순치 않다.
화려한 수식을 빼낸 절제한 감정. 결국엔 사람을 향해 있다. 누르고 눌러도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오는 서정. 그 바다에, 그림 앞에 서면 다 보인다. 전시는 5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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