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한반도 위기론’이 여름철 찜통더위를 더욱 달구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서 촉발된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 사이의 긴장상태가 전면적인 무력대치 국면으로 표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즉, 한반도를 무대로 하는 전쟁이다. 단순한 분석 차원을 넘어 현실적인 분위기도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8월 위기설’까지 퍼져가는 상황이다. 휴전선을 경계로 북한과 대치중인 우리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런 얘기들이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하다.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남북 간에 전면전이 일어나 정전협정으로 마무리된 지도 어느덧 60여년이 지나간다. 그때 참화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경우의 폐해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동안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경제적 성과가 하루아침에 쑥대밭으로 변하고 마는 것은 물론 우리 주변의 소중한 생명들이 무차별로 희생되고 말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피할 수 없는 비극이다.
하지만 미국의 기류부터 심상치가 않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계속한다면 전쟁이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섬뜩하기만 하다. 오는 11월부터는 하와이에서 북한 공격에 대비한 대피훈련도 실시될 예정이다. 북한을 후원하는 중국의 입장은 더욱 노골적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과거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했다”며 해 볼 테면 해보자는 투다. 군사 열병식에 전투복 차림으로 등장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미국까지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에 거의 성공한 만큼 미국에서 ‘선제 공격’ 방안이 유력하게 제시되는 것도 당연하다. 더구나 만약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상황일 뿐 미국 본토에는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손을 내민 것은 하나의 지나가는 무마 제스처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다고 당장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일단 전쟁이 터지게 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어느 쪽이든 마지막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러시아, 이란과 함께 북한을 제재토록 하는 패키지 법안이 발효됐듯이 우선은 경제적 압박 카드가 동원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더 이상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발끈하고 있는 이유다.
전쟁 여부를 떠나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움직임이다. 당장 무력 충돌로 번지지 않는다고 해도 갈수록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여기에 제동을 걸 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발표된 1991년 이래 북한을 대화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져 있던 우리 역대 정부의 책임이기도 하다.
지금 돌아가는 모습이라고 다르지 않다. 청와대 안보팀을 비롯해 내각의 외교·국방 라인에 이르기까지 위기 국면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지에 대한 밑그림을 갖고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책략이 부족한데다 책임을 지려는 태도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여전히 엉거주춤하는 듯한 모습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결단이 미뤄지는 탓에 오히려 중국의 과도한 보복 공세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다루면서 당사자인 우리 정부를 따돌린 채 일본과 협의하는 ‘코리아 패싱’ 사태가 왜 빚어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혼자 북한 문제를 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처지가 아니라면 우방국들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만약 소규모 국지전이라 하더라도 무력 충돌이 빚어지는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반도 위기론’이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넘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