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김상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직전까지 화물을 실었다.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정부 책임도 있지만 이런 기업의 부도덕도 반드시 지적돼야 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8일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청문회서 한 발언이다. 그는 “물류 대응책을 세우려고 화주 및 운항정보를 산업은행을 통혜 수차례 요구했지만 전부 거부당했다”며 “개인적으로 개탄스럽다”고 하기도 했다.
정리하면, 현재 물류대란의 책임은 한진해운에 있지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회사가 더 이상 살아날 방법이 없어 법정관리에 가려면 사전에 준비 과정을 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반박은 현재 물류대란을 해소하는 키는 한진해운에만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결국 한진해운이 돈을 더 내서 물류대란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지적은 해운업 특성과는 상당히 괴리된 발언이다. 정기선인 컨테이너선 특성상 이미 1년치 이상의 화물이 계약된 상황에서 조기에 영업을 중단하기란 쉽지 않다. 시간을 좁히더라도 한진해운이 하역을 중단하려고 해도 최소한 한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단계에서 회사 회생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짐을 싣지 않았다면, 시장에 법정관리 신호가 전해지면서 오히려 시장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해운물류회장을 지낸 성결대 한종길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도 “유럽까지 운항시간을 생각하면 법정관리 신청 전 5주전부터 배를 세웠어야 하는데 자율협약 중인 기업이 최소한 영업노력도 하지 않고 채권단 의사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한다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정부와 한진해운의 책임 떠넘기기와 명분 싸움이 지속될수록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나가고 있다. 미국 법원이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압류금지 조치를 승인하면서 하역이 일부 진행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추가로 하역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핵심이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마련한 1000억원 중 600억원은 대한항공 이사회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제대로 쓰여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쯤되면 정부와 채권단이 기존 대응 방식만 고수하기만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진해운이 청산하든 회생하든 핵심은 한진해운이 최소한 가동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돼야 한다. 더 이상 한진해운의 신뢰가 떨어진다면 청산할 수 있는 자산조차도 남은 게 없을 지경이다. 채권단이 건질 수 있는 돈이 거의 없게 되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만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