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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나는 요즘 소위 말하는 ‘흙수저’인 셈이지만 남이 보는 잣대는 중요하지 않다. 남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제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했다. ‘하고 싶은 것 하라’는 아버지는 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스스로를 존경하면서 살라.”
세계가 공인하는 바그너 전문가인 베이스 연광철(50) 서울대 음대 교수는 공고 출신이다. 클래식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이력이다. 지금은 세계 주요극장을 안방 드나들 듯하지만 고3 때까지 피아노를 본 적이 없는 산골 출신인 데다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들은 적도 없었다고 했다.
“하루빨리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공고에 들어갔던 건데 취업의 관문인 건축사 자격시험에 낙방했다. 망연자실했다. 번뜩 1년 전 학교경연대회에서 ‘선구자’를 불러 1등한 일이 떠올랐다. 노래를 해야겠다 싶었다. 석 달 공부해 청주음대에 합격했다. 아버지는 소를 팔았다.”
1996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추천으로 바그너 오페라만 공연하는 독일 바이로이트축제에 입성한 그는 올해까지 19년째 주·조연을 맡는 단골 출연자다. 작년에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발퀴레’ ‘탄호이저’ 등 무려 세 작품에 출연해 4주간 16번이나 무대에 올랐다.
국내에서 그의 ‘바그너’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연 교수는 18, 20,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이 41년 만에 선보이는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달란트 선장 역을 맡는다. 20일은 김일훈이 교체 출연한다.
이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원작을 재해석해 시대배경을 18세기에서 50년 전으로 바꾸고 무대도 현대화했다. “달란트는 딸을 가난한 사냥꾼 약혼자 대신 부유한 네덜란드인 선장과 결혼시키려고 하는 아버지다. 귀에 남는 선율도 있고 어렵지 않을 거다. 옛날얘기지만 사랑·결혼 등 현대사회에서 얼마든지 투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쉽게 읽히는 작품이다.”
대다수 베이스가 어둡고 둔탁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면 연 교수는 가볍고 따뜻한 저음을 내는 게 강점이다. 다만 독일에선 외국인이란 편견에 말 못할 고생을 했다고 했다. “슬럼프 같은 건 없었지만 정체성 혼란은 있었다. 동양인으로서 서양무대에 서야 하는 건데 연출가 중에는 대놓고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춘향전’의 변사또를 방글라데시 배우가 한다고 하면 이해하기 쉽다. 극복하는 방법은 잘 해내는 것밖에 없더라.”
2018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이 공연을 마친 뒤 내년 한 해에만 뉴욕과 런던, 빈, 파리, 마드리드를 오간다. 바쁜 중에도 12월에는 고향인 충주문화회관에서 독창회를 갖고, 은사가 있는 양로원에서 공연을 한다. 연 교수는 “되도록 고국무대에 서려고 한다. 한국오페라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흔 살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 그 이후에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조용히 살려고 한다. 촌에서 났으니 촌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 거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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