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선의 내멋대로 캠핑]"춥고 불편한 캠핑, 왜 하니?"

함정선 기자I 2015.03.21 03:00:00
“따뜻한 집 놔두고 왜 한데서 자?” 남편이 처음 캠핑 얘기를 꺼냈을 때 내 반응이었다. 전국 각지에 잘 꾸며놓은 펜션이 넘쳐나고 소셜사이트를 잘 이용하면 고급 호텔도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에 텐트에서 불편하게 자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캠핑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차에 텐트와 돗자리 싣고 떠나던 여행으로, ‘불편’이라는 두 글자로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불편하고 제대로 씻기도 어려운, 여자라면 고개를 흔들 그런 불편함 말이다.

물론 최근에는 고급 텐트가 출시되고 화장실과 세면대 등도 잘 갖춰진 캠핑장이 등장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밖에서 자는 것은 매한가지 아닌가.

게다가 캠핑 장비를 모두 구매해야 하는 것도 마뜩잖았다. 어느 집은 캠핑 장비를 구매하느라 수백만원을 썼다고 했다. 불편을 위해 수백만원을 쓰는 여가생활에 대해 조금도 타협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이 캠핑 얘기를 꺼냈던 그 시절 우리 아이는 고작 생후 8개월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캠핑은 그저 남편의 ‘꿈’과 ‘희망’일 뿐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천천히 나를 설득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캠핑 장비부터 구매하는 대신 텐트와 테이블, 의자와 버너, 코펠 등 장비가 갖춰진 곳에서 하루를 지내는 이른바 ‘캠핑 체험’을 제안했다. 여행할 때마다 나를 여행사 직원 부리듯 손도 까딱하지 않았던 남편이 알아서 캠핑장을 골라 예약까지 마쳤다.

캠핑장비가 모두 갖춰진 포천의 한 캠핑장. 텐트와 장비 등을 구매하지 않고 캠핑을 체험해볼 수 있다.
‘한 번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마음으로 남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8개월 아이를 데리고 우리 가족은 첫 캠핑을 떠났다. 남편은 아이를 위해 추가 캠핑 장비를 대여할 수 있는 사이트까지 가입해 전기매트와 난로도 빌렸다.

캠핑 체험이 끝나면 남편의 입에서 다시는 캠핑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을 줄 알았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남편이 아닌 내게 캠핑장은 ‘신세계’였다. 좁고 낮았던 그 옛날 텐트 따위는 없었다. 거실과 잠자는 곳이 따로였다. 돗자리 펴두고 쪼그려 앉던 시절은 20여년전 얘기였다. 캠핑장에 마련된 화장실과 세면대는 깨끗하고 쾌적했다.

TV와 밀린 집안일에서 벗어나 가족이 무조건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좋았다. 공기 좋은 곳에서 마시는 맥주의 맛도, 남편이 열을 내며 화로에 불을 붙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는 구경도 못 했던 별을 바라보며 화로에 장작을 던지는, 우리 가족만의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남은 숯에 구워먹는 고구마와 감자의 맛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켰던 장면은 캠핑장에서 만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캠핑장을 뛰어다녔고 해먹에 누워 장난을 치거나 비눗방울을 불며 놀았다. TV와 PC게임은 없었다. 주말이면 피곤에 찌들어 소파와 한몸이 되는 아빠들은 불을 피우고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공을 차느라 바빴다.

나는 어느샌가 ‘우리 아이가 걷고, 말하고, 뛰어다니게 될 때 저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계획대로 캠핑에 빠져버렸다.

따뜻한 전기매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잠든 밤을 보낸 후 맞는 아침, 나는 남편에게 두 손을 들었다. 허리는 뻐근했지만 머리는 맑았다. 본격적인 캠핑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도 모르는 채 캠핑족의 길로 들어서겠노라고 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래, 시작해보자, 캠핑.”

소규모 화로에서 가족끼리 즐기는 캠프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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