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약 판권도 임대'..진화하는 의약품시장 방어전략

천승현 기자I 2015.01.30 03:00:00

다이이찌산쿄, 컨설팅업체에 복제약 허가권·CJ헬스케어에 판매권 부여
오리지널 시장 방어 전략..복제약 판권도 손쉽게 회수하려는 장치
국내업체들 "지나친 시장방어 꼼수" 반발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의약품 시장에서 오리지널 의약품과 복제약(제네릭)은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인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와 동시에 제네릭이 시장 침투를 본격화하면 오리지널 의약품은 시장 방어를 위해 다양한 전술을 가동한다. 다국적제약사가 국내업체와 손 잡고 오리지널 의약품을 함께 팔면서 영업력을 강화하는 방식이 가장 성행하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다국적 제약사가 오리지널 의약품의 포장만 바꾼 쌍둥이 제품(위임 제네릭)을 하나 더 내놓는 전략을 새롭게 선보이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위임 제네릭(Authorized Generic)의 판권마저도 국내사에 한시적으로 빌려주면서 경쟁을 부추기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국내업체들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지나친 시장 지키기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부터 JW중외제약(001060), 제일약품(002620), 신풍제약 등 22개 업체가 고혈압약 ‘세비카’의 제네릭 제품을 발매했다.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세비카는 두 가지 성분(암로디핀+올메살탄)을 결합한 복합제로 연간 5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제품이다.

다이이찌산쿄의 고혈압약 ‘세비카’
세비카의 특허만료와 함께 국내업체들의 제네릭 제품이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응해 다이이찌산쿄는 사이넥스를 통해 세비카의 제네릭 제품의 하나인 ‘세비액트’에 대한 허가를 받고 이를 CJ헬스케어가 판매하도록 했다. 세비액트의 정체는 오리지널인 ‘세비카’의 포장만 바꾼 위임 제네릭으로 드러났다.

다이이찌산쿄가 국내업체들의 제네릭 공세에 대비해 똑같은 약을 CJ헬스케어가 판매토록 하면서 시장 방어를 더욱 견고히 하겠다는 의도에서 새로운 판매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다국적제약사가 위임 제네릭을 발매, 시장 방어를 강화하는 것은 몇 년 전부터 국내 제네릭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전략이다.

이번 세비카의 위임 제네릭이 기존 제품과 다른 점은 ‘사이넥스’라는 제3의 업체가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다이이찌산쿄가 공급하는 위임 제네릭이 사이넥스라는 업체의 이름을 달고 CJ헬스케어가 판매하는 복잡한 구조다. 사이넥스는 주로 의료기기 수입과 수입의약품 허가를 대행하는 컨설팅 업체다.

기존의 위임 제네릭은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제약사에 허가권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크레스토’의 위임 제네릭 ‘비바코’의 판매허가를 CJ헬스케어에 줬다. 또 다이이찌산쿄 ‘올메텍’의 포장만 바꾼 ‘올메액트’ 역시 CJ헬스케어가 판매 허가를 받았다.

고혈압약 ‘세비카’ 복제약 현황
이는 다이이찌산쿄가 위임제네릭의 허가권을 CJ헬스케어에 한시적으로 부여하면서 상황에 따라 판권을 회수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국내업체가 위임 제네릭의 허가권을 갖고 있을 때 추후 다국적 제약사가 판권을 회수하려면 허가를 다른 업체에 양도·양수하거나 재허가 절차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위임 제네릭의 실적이 부진할 경우 손쉽게 판권을 다른 업체에 넘길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구축한 셈이다. 실제로 다이이찌산쿄와 CJ헬스케어는 세비액트의 판권을 일정 기간으로 못 박은 상태다.

자회사나 계열사를 활용해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 방어에 나선 업체도 있다. 노바티스의 자회사 산도스는 노바티스의 고혈압치료제 ‘엑스포지’의 제네릭 제품 ‘임프리다’를 내놓고 국내업체와 공동판매를 진행 중이다. 상당수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국내외 업체들도 자회사나 계열사를 이용해 제네릭 허가를 받고 판매 파트너 물색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임 제네릭은 2000년대 이후 미국에서 등장한 제네릭 방어 전략이다. 후발주자의 시장진입을 저지하려는 불공정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법원에서는 위임 제네릭의 시판이 합법이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제네릭 업체들의 반발은 거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십개 제네릭이 등장하는 국내 시장에서 위임 제네릭 전략은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업체를 활용해 시장을 지키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다국적 제약사들의 위임 제네릭 전략 가세로 제네릭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제네릭 업체간 가격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들 입장에선 약값 부담이 줄어들 여지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