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어,어….” 지방 공연을 위해 직접 차를 몰고 가는 사내는 톨게이트를 지날 때 통행요금을 받는 직원에게서 “많이 컸네”란 소리를 자주 듣는다. 불혹을 앞둔 뮤지컬 배우 김수용(38). 파고다공원에 가면 ‘아이돌’이 따로 없다. 대학 다닐 때 공연을 준비하며 소품 사러 파고다공원 인근 그릇시장에 갔다가 잠시 공원에 들렀더니 ‘즉석 팬미팅’이 벌어졌다. “새 모이 주던 할아버지가 오셔서 ‘영구 아니냐’고 물어 맞다고 하니 주위에 계신 분들이 다 몰려오셔서 ‘아유 이 총각이 맞네’라며 반가워하시더라.”
|
치열했던 아역시절의 흔적은 손에도 새겨져 있다. 뮤지컬 ‘보이첵’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유독 손등에 주름이 많았다.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연기를 했는데 그때는 지금과 비교하면 특수분장이 열악해 끈끈이 같은 걸 손등에 붙이고 분장했다. 손을 펴면 안 되는데 장난치면서 펴다가 주름이 많이 갔다, 하하.”
가난한 전쟁고아는 커서도 ‘하층민’으로 산다. 김수용은 ‘보이첵’(11월 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아이와 아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콩만 먹으며 생체실험을 하는 힘 없는 군인을 연기한다. 공연 연출을 맡은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보호하고 동정해 주고 싶은 배우로 김수용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윤 대표에게서 2년 전 출연 제의를 받았다는 김수용은 “대본을 읽으면서 이 시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사랑보다 가족을 위한 절실함에 먼저 끌렸다”는 게 그의 말이다.
‘보이첵’은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부조리한 계급사회에서 인간이 존엄성을 잃고 파멸하는 모습을 그렸다. 주인공 남녀의 사랑은 비극이면서 극단적이다. 김수용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보이첵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집중했다”고 말했다.
뮤지컬에서 쉽게 주목받은 건 아니다. 김수용은 “연기를 하면 안 되는 아이”라고 자책하며 포기하려 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난 뒤다. 드라마와 영화 오디션에서도 숱하게 떨어졌다. 김수용은 “아역배우 이미지가 너무 셌던 것이 독이 됐다”고 했다. 어른이 된 김수용을 어디서도 먼저 찾지 않았다. “옷 협찬받아 오디션 현장에 가 정말 땅바닥에 몸 굴러가면서 연기했는데 그때 한 분이 ‘그렇게 하고 싶으냐’고 묻더라. 캐스팅 해놓고 다른 신인 배우로 갈아치운 적도 있다.”
|
방황하던 김수용은 2001년 뮤지컬 ‘더 플레이’를 보고 다시 설레였다. “유준상 선배가 출연한 작품이었는데 배우들의 열정적인 몸짓을 봤다. 배우라면 자신의 몸 전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똥철학’이 이때 생겼다. 시쳇말로 머리에 꽂힌 게 바로 뮤지컬이었다.” “심장에 화살이 박힌” 희열을 봤다는 김수용은 바로 뮤지컬 공부에 들어갔다. ‘동국대 연영과 4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알지도 못하는 뮤지컬 관계자를 찾아가 복사하고 돌려줄테니 악보만 빌려달라”고 부탁하며 무대의 어법을 배웠다. 경험을 쌓기 위해 앙상블 모집에도 문을 두드렸다. 다리를 찢지 못해 스트레칭도 안 되느냐는 꾸지람을 들으면서까지 매달렸다.
노력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어린 ‘영구’는 뮤지컬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배우로 자랐다. 2002년 ‘풋루스’로 시작해 2005년 박쥐인간으로 열연한 ‘뱃보이’로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을 탔다. ‘햄릿’ ‘헤드윅’ ‘노트르담 파리’ ‘모차르트!’ ‘영웅’ 등을 거치며 대학로에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안정적인 연기와 수준급의 노래 실력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목표? 하나다. 연기 32년차지만 배우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