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6세대 공장 | |
LPL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LCD산업을 피와 땀으로 일궈냈다. 세계 LCD업계의 양대축인 삼성전자(005930)와 함께 일본을 제치는 쾌거를 이루며 우리나라를 세계 1위의 LCD 초강국으로 도약시킨 장본인이다.
구미사업장은 이에 걸맞는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노트북용을 비롯해 모니터용, TV용, 휴대폰용 등 다양한 LCD를 생산하는 1~6세대 라인과 모듈공장을 갖춘 명실공히 국내 최대의 LCD 산업단지로 평가받고 있다. 클린룸으로 이뤄진 6세대 공장안에서는 세정-증착(메탈 코팅)-포토-식각(에칭)-검사 등 일련의 공정간 유리 기판을 나르는 무인 운반기계 AGV(Auto Guide Vehicle)들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 번에 3.5톤 가량의 유리기판을 옮길 수 있는 AGV는 프리미엄 BMW 한 대와 맞먹는 고가라는 게 회사측 설명.
그중에서도 백미는 건물 부지 면적만 1만평에 달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6세대 최첨단 공장. 축구장을 7개 정도 붙여놓은 엄청난 크기다. ▲ LCD 패널 정밀검사 장면
6세대 라인은 가로 1950mm, 세로 2250mm 크기의 유리 기판을 이용해 한번에 32인치 8장이나 37인치 6장 등 월 9만장의 대형 TFT-LCD를 하루 3교대 불철주야로 24시간 생산하고 있다.
LPL은 10인치 이상 대형 LCD시장에서 98년 5위(11.3%)에 첫 진입한 이후 99년(16.5%)부터 2002년(16.6%)까지 삼성전자에 이어 4년 연속 2위를 차지했다. 2003년(21.2%)에 드디어 1위로 등극했고 올 상반기(22.0%)도 1위를 유지했다. 또 미국 디스플레이산업 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로부터 2002년부터 4년 연속 고객 만족도 1위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양(量)과 질(質) 모두 세계 최고임을 인정받고 있다.
▲ 지난 95년8월 LCD 첫 출하 기념식 | |
이같은 결실의 출발점은 지금부터 10년 전인 9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성사(구 LG전자) 중앙연구소가 지난 87년 5명의 연구원으로 TFT-LCD 개발에 들어간 지 8년만에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9.5인치 노트북용 LCD를 첫 출하하는데 성공했다.그 당시 세계 LCD업계를 호령했던 샤프, 히타치, NEC, 도시바 등 내로라하는 일본 업체들로부터 기술협력을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맨 땅에서 거둔 성과였던 터라 값어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 생산의 성공이 곧 판매는 아니었다. 일본 LCD업계의 기술수준과 시장지배력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해외 바이어들은 LG의 제품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판매량 7000대, 매출 15억원, 영업적자 1100억원. 95년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2005년. `매출 8조3282억원, 영업이익 1조7282억원(2004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연간 판매량 5225만대`. 성적표가 `F`에서 `A`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10년만에 `매출액 5500배 증가`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95년부터 4년간 단 한푼의 수익도 내지 못했던 LPL은 99년 한 해에 837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단숨에 과거의 적자를 만회했다. 임직원은 1100명에서 1만3000명으로, 사업장 규모는 3만평에서 21만평으로 팽창했다.
이같은 대변신은 LCD 산업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과감한 적기 투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LG전자(066570)가 99년 필립스와 합작사 LPL을 만들면서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인 16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한 게 최첨단 LCD 생산 시설 구축을 통해 세계 LCD 시장을 평정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했다. 특히 정확한 시장예측을 통한 차별화 전략에 바탕을 두고 과감히 투자한 게 적중했다.
노트북용 LCD의 수요 비중이 높았던 99년에는 이미 모니터용 LCD 1등 전략을 수립했고, 모니터용 LCD 비중이 높아지자 TV용 LCD로 무게중심을 빠르게 이동하는 `한발 앞선` 투자에 나선 것이다.
2002년3월 세계 최초 4세대 공장 준공, 2003년5월 역시 세계 최초 5세대 공장 준공, 2004년8월 세계 최대 6세대 공장 준공 등이 이를 입증한다. 2002년 세계 LCD 산업이 공급 극심한 침체기를 맞았으면 경쟁업체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을 때 과감하게 6세대 투자를 결정한 게 대표적 사례. 이를 통해 LPL은 LCD 크기의 표준화를 선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용득 LPL 경영기획담당 상무는 "치밀한 차별화 전략을 바탕으로, 한 템포 빠르고 과감하게 투자한 게 지금의 LPL를 만들었다"며 "앞으로 LCD TV시장의 성장이 또한번의 결실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절감 및 혁신활동 역시 원동력이다. `L2C(Leadership in Cost Competiveness) 3020` 운동이 바로 그 것. 이를 통해 매년 총원가의 30%를 떨어뜨리는 반면 영업이익은 30% 높이고, 경쟁사대비 이익률 차이를 20% 확보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LPL은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대만이 바짝 추격해 오고 있고, 복병인 중국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이한 대응으로 우리나라에게 추월당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래서 그냥 `1등`도 아닌 `확실한 1등`이 목표다. 인사 구호가 "1등 합시다"에서 "확실히 1등 합시다"로 바뀌었다. 심지어 사진을 찍을 때도 "스마일" 대신 "LCD"라며 미소를 짓는다. 조직이 온통 1등을 향해 똘똘뭉쳐 있다는 느낌이다.
LPL 직원들에게는 남다른 기억이 있다. 일명 `눈물 젖은 보리쌀`. 2001년 세계 LCD업계가 가격 폭락으로 침체의 늪에서 헤멜 당시 6세대 공장 부지에 잔디를 심는 대신 보리를 뿌렸다. 비용 절감도 해야 했지만 극심한 어려움을 엄동설한을 이겨내는 보리와 함께 헤쳐나가자는 굳은 의지를 땅에 심겠다는 마음에서였다. ▲ 내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중인 파주 7세대 공장
이 상무는 "2002년 보리가 익어갈 무렵부터 LCD 경기가 살아났고, 이로 인해 세계 최초로 가동에 들어간 5세대 라인을 바탕으로 4분기에 세계 1위에 올라서는 개가를 올렸다"며 "같은해 7월 전 임직원들에게 전달된 보리쌀 한 봉지는 조직의 1등 정신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LPL는 내년 상반기 파주 7세대 라인을 가동, 42인치와 47인치 LCD를 본격 생산한다. 이를 통해 대형 LCD의 표준화 등 주도권을 선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구미는 모니터 노트북 휴대혼용 등 `IT용 LCD`, 파주의 경우 대형 TV용 `가전용 LCD`를 생산하는 이원화 체제로 육성될 예정이다. 특히 파주 LCD단지는 협력업체, R&D센터, 대학교 등이 총집결하는 110만평 규모의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클러스터로 조성될 계획이다. LPL은 이를 통해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