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비 - 정지용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 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죵죵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거리.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히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날,
붉은 닢
소란히 밟고 간다.
요즘처럼 여름장마가 고마워본 적이 없습니다. 봄철내내 황사에 스모그가 끼어 숨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여기면서 간간이 내리는 봄비의 고마움을 장마철이 되며 언제 황사가 있었냐는 듯 아예 잊을 뻔한 것을 되새기며 비로소 장마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서야 생각해 냅니다.
먼지날리는 길거리에, 작은 개울에, 나뭇가지 위 잎파리에 갑작스레 내리는 여름 소나기의
풍경이 아름다운 서정으로 살아나는 정지용님의 ‘비’를 떠올리며 가뭄 속의 단비, 아니 스모그를 걷어내고 찌는 더위를 삭혀주는 장마비를 바라봅니다.
어젯밤 FRB의 Fed Fund 금리를 다시 0.25% 포인트를 인하하여 드디어 1958년 이후 처음으로 1%로 인하하였습니다. 2001년 1월 3일 6.5%였던 금리를 50bp 낮추어 6%로 끌어 내리며 시작한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은 13번의 금리인하(50bp 9번, 25bp 4번)를 겪으며 5%나 점프다운하였습니다.
이번에도 50bp냐 25bp냐를 놓고 채권, 외환, 주식시장에서는 제각각 신경전이 벌어지고, 인하발표 후에도 여전히 전망과 해석이 중구난방입니다. FRB의 시각은 여전히 경제의 횡보가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인데 비하여 혹자는 바닥이다, 추가 디플레이션이 올 것이다는 반응들이 뒤섞여 또 다시 몇 달의 경제지표와 세계경제 상황을 보고 8월에 다시 보자는 방향인 것 같습니다.
당초 50bp 인하를 예상했던 것이 빗나가며 주식시장이 빠지고, 달러가 상대적으로 약세의 입지를 잃고, 채권시장마저 살포시 주저 앉아 장단기 금리차를 확대시켰습니다. 장단기 채권 사이의 투자기준이 다시금 헷갈리게 된 것이지요. 현재 스왑시장 기준으로 6개월 USD Libor와 3년 금리와의 차이는 약 1%, 5년물과는 1.6%, 10년물과는 2.7%나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울기가 급하고 기간 프레미엄이 높이 붙어 유동성프레미엄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것이겠지요.
참고삼아 WSJ이 분석해 본 금리인하의 약발이 다하면 써먹을 수 있는 전략(?)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마 그간 zero 금리정책을 써온 일본과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첫째, open mouth 전략-그야말로 동들이지 않고 입으로만 때워 시장을 살려보겠다는 것이지요. 유능한 웅변가이거나 단순한 립서비스거나...
둘째, 인플레(또는 경제성장률) 목표정책입니다. 일단 목표에 달성할 때까지 무한정 저금리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지요. 일본경제의 재판같은...
셋째, 연방은행이 기존의 정부발행 장기채를 왕창 매입하여 장기금리를 인하를 유도하여 투자 및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는 꿈같은 주장과...
넷째, 이제까지 써 먹어 왔던 달러의 약세정책(그만큼 외화를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실탄소비가 많고 결국 환율전쟁은 전세계로 확산된다)을 통해 수출을 늘리고 경기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방안으로 다들 써먹는 고전적인 방법이다.
다섯째, 정부가 직접 회사채와 모기지채권을 매입하여 시장의 전반적인 금리를 강제로 인하하여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소박한 주장...
그런데 정말 걸작인 것은 첫 번째 말로 때우는 방식이 그중 나을 것이라는 뒤풀이입니다.
그만큼 경제는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돈을 들여도 안되고, 역시 경제란 여자의 마음과 같아서 돈으로도 보석으로도 안되고 오로지 그 속마음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때로는 비오는 날의 서정이 그윽한 정지용님의 시처럼...
그간의 외환시장에서의 개입(?) 공로인지 몰라도 오랜만에 엔/원 환율이 10원에 안착해 있습니다(달러/엔 118.45, 달러/원 1186.80). 물론 일본 경제와 한국경제의 비교가 제대로 전제되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달러 약세의 파고 속에 원화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은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엄청난 외환보유고의 통화 포트폴리오 문제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외국인 매수세의 폭과 깊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전반적인 이머징 마켓에 대한 회의론까지 세계시장에 풍미하고 있어 어쨋튼 마지막 보루로서의 외환시장의 역할은 고정환율제니 어쩌니 해도 어딘가 자리매김은 해야할 것입니다.
유럽시장의 분위가 점점 심각해지는 것같지요? 최근 며칠 동안의 각종 지표들을 보면 독일 경제를 주축으로 심각한 우려가 짙어가고 있음이 감지됩니다. 0% 성장률 예상이나,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의 고육책을 앞당기겠다는 것이나...프랑스의 물가하락과 소비지출 감소도 우려할 현상입니다. 모두가 어려운 때란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것이 급작스럽게 오는 공황은 아니라도 서서히 목을 조른 스모그같은 것이란 말입니다.
벌써 오랫동안 세계 경제가 바닥으로 쓸려 내려오다 보니 만성이 돼 가는지 시장을 보는 눈과 자세가 자꾸만 흐트러집니다. 나라 안을 보아도 그렇고 밖을 보아도 신통한 것들이 없이 암울한 상황만 보이는 것 같고, 각종 경제 전망자료들도 소망스럽질 못합니다. 경제를 담당한 관료들이 솔직한 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지, 못하는지는 상관없지만 그저 길거리에 떠도는 민초들로서는 립서비스라도 관계없으니 나아갈 방향과 구체적인 전략이 수반된 대책이 그립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과 엘리트들의 비젼과 액션이란 것이지요.
우리 목을 조르는 스모그를 싸악 씻겨가는 빗줄기처럼 시원한 장대비에 이은 파란 하늘과 높다랗게 걸린 무지개가 참 그립습니다. (산업은행 금융공학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