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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깃발 든 MZ노조 “덩치보다 가치관 중요…제도 바꾸겠다”[인터뷰]

황병서 기자I 2023.02.21 06:00:00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21일 발대식
유준환 의장 “노동운동의 또다른 가능성 찾아”
“회계 강화 필요하지만, 공시는 반대”
포괄임금제 등 개선 요구…“선거철 지지 없다”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변화하는 사회에서 노동운동의 또다른 가능성은 항상 생겨난다고 봅니다. 우리는 ‘공정’을 키워드로, 함께 하는 노동조합이 공통적으로 문제라 느끼는 제도를 개선하려 합니다. 당장 덩치를 키운다기보단,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가치관을 널리 알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른바 MZ(밀레니얼·Z)세대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양대 노총과의 차별화를 선언하며 21일 닻을 올린다. MZ세대의 화두인 ‘공정’, ‘상생’, ‘상식’을 일터에서 실현하기 위해 뭉친 이들이 노동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맺을지 주목되고 있다. 유준환(32)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LG전자 사람중심 노조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포괄임금제 바꿔야…회계 결과 대국민 공개는 반대”

유준환 ‘새로고침 의장(LG전자 사람중심 노조위원장)’이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인근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황병서 기자)


유 의장은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새로고침’이란 이름은 제가 제안했다, 이름처럼 아예 새로운 것으로 싹 다 바꾸자는 게 아니라 바꿀 게 있다면 바꾸고 기존 노동운동에서 취할 게 있다면 취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공정’”이라며 “21일 발대식 이후에 채용시장 등에서 공정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위한 공론화 활동을 먼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정한 노동시장과 이를 위한 다양한 교육과 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들이 꼽은 ‘채용시장의 공정’은 절차와 평가를 두루 담고 있다.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기성 노조, 기득권에 대한 직격으로도 해석된다. 민주노총에 속한 일부 사업장엔 아직도 노조의 고용세습, 임직원 자녀 특별채용과 같은 ‘부모 찬스’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제가 된 건설현장의 노조원 협박 채용까지, 모두 악습들이다. 유 의장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채용 절차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 절차를 따져볼 공정한 제3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정책과 제도를 우선으로 두고 노동운동을 벌이겠단 방침이다. 포괄임금제, 교섭창구단일화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 대표적인 제도다. 포괄임금제란 근로계약 체결 시 연장, 야간, 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해서 예정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는단 게 맹점으로 꼽힌다. 유 의장은 “저를 포함해 협의회 소속 노조들도 불합리하다고 느껴온 관행인 포괄임금제를 정부에서 특별근로감독한다고 하니 찬성”이라며 “근로시간 산정을 흐리는 이 제도에 대해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섭창구를 다양화해야 그동안 노조가 조직되지 않았던 직군, 직무에서도 노조를 설립할 원동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유 의장은 윤석열정부에서 추진 중인 노조의 회계 투명성 강화에도 공감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조합원이 원할 때 회계 감사결과를 알리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이걸 정부가 요구하고, 나아가 공시를 만들어서 온 국민이 볼 수 있게 하자는 데엔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법적 근거가 없는데다, 조합운영은 조합비로 운용되는 것이니 조합원 의사에 따라야지, 온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건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총선 와도 지지선언 안해”…‘탈정치’ 천명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단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양대노총과 차별화된 ‘탈정치’ 선언이다. 유 의장은 “노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정책, 제도는 사업장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노동과 관련없는 정치 현안엔 관여하지 않고, 의견도 내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특히 내년 4월로 다가온 국회의원총선거(총선), 대통령선거(대선)와 같은 정치이벤트 때에도 “특정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은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양대 노총이 지금껏 선거 때마다 취해온 전략과는 정반대다. 유 의장은 “인물, 정당을 지지하기보다 우리가 원하는 정책에 대해서만 입장을 내겠다”고 부연했다.

한편, 새로고침에는 현재 8개 기업 노조(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부산관광공사 노조·서울교통공사 올바른 노조·코레일네트웍스 노조·한국가스공사 노조·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노조·LG전자 사람중심노조·LS일렉트릭 사무노조) 54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와 SK매직 현장중심 노조 등 2~3곳이 신규 가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장은 “노조원 참여 수가 많을수록 다양한 의견을 받을 수 있어 좋긴 하겠지만, 그것이 주된 목표는 아니다”며 “우선순위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필요하다 느끼는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고침’의 발대식은 21일 서울 용산구 소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다. 이들은 주요 목표로 △건전하고 올바른 노동조합 문화 및 인식개선 사업 △효과적이고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동시장 연구 △채용비리 및 불공정 채용 문제 해결 촉구 △노동 사각지대에 놓인 사업장의 노동자 의견 청취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등 노동시장 공정성 저해하는 법 개정 촉구 등을 내세울 걸로 전해졌다. 유 의장은 “미취업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 직원이 소수인 사업장, 노조를 꾸리기 힘든 분들 등을 상대로 다양한 교육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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