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456억원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재미있는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수도 있지만, 오징어 게임과 같은 상황이 실제 자본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공교롭게도 오징어 게임으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진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이 그 주인공이다.
‘춘추 전국시대’ 내지는 ‘다자구도’ 국면으로 흐르던 OTT 시장에서 백기를 드는 사업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우리의 경쟁력을 보여주면 된다’던 OTT들의 자신감이 자본시장의 차가운 평가와 마주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예상보다 잔인하게 흐르고 있는 OTT 업계 패권 다툼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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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OTT 업계에서는 굵직한 소식이 연이어 나왔다. CJ ENM(035760)과 JTBC가 의기투합한 OTT ‘티빙’이 KT(030200)가 론칭한 OTT인 시즌(seezn)과 합병하면서 몸집 키우기에 나섰다.
KT는 지난 14일 OTT 경쟁력 강화와 K-콘텐츠 성장 가속화를 위해 시즌과 티빙의 통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기준 국내 OTT 월간 활성이용자(MAU)는 넷플릭스(1117만명), 웨이브(423만명), 티빙(401만명) 순이다. 티빙에 시즌(seezn)이 더해지면 티빙의 국내 OTT 시장 점유율은 단숨에 2위로 도약하면서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OTT 업계의 다윗’을 꿈꾸던 왓챠는 지분(구주) 매각이나 M&A 등 다양한 가능성 여부를 타진 중으로 알려졌다. 최근 박태훈 왓챠 대표가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메일을 보내면서 업계 안팎에 퍼져 나갔다. 해당 작업은 별도의 주관사 없이 박 대표가 직접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왓챠는 연말 기업공개(IPO)와 웹툰·음악 등 서비스 확장 계획을 내놓으며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성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냉정한 평가와 마주하면서 자금 마련에 난항을 겪었고 지분 매각, 나아가 경영권까지 고려 중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국내외 OTT들이 시장에 뛰어들던 때 가장 많이 언급된 논리는 “시장에 활기가 돌면 모든 상점이 장사가 잘 된다”였다. OTT가 거스를 수 없는 콘텐츠 소비 트렌드로 자리한다면 다자 경쟁에서 모두가 유의미한 성과를 낼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희망 회로가 녹아있던 세간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시장에 활기가 돈 것은 맞지만, 장사가 잘 되는 상위권 상점에 손님 쏠림 현상이 본격화하리란 점을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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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디지털 전환시대 콘텐츠 이용 트렌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이용자들은 평균 2.7개의 OTT 플랫폼을 구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넉넉하게 잡아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야 OTT로서의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는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OTT 구독은 늘리지 않고 선호하는 OTT 순위를 바꾸는 흐름이 대세가 됐다는 점이다. 이는 요금 부담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앞선 조사에서 구독하던 OTT 요금이 10% 오를 경우를 묻는 말에 과반에 가까운 48.8%의 응답자가 다른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냉정하게 말해 3등 안에 못 들면 사실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감지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흐름은 당장 내일 해지하면 그만인 ‘구독 경제’를 표방하는 OTT 산업의 숙명과도 맞물려 있다. OTT 구독을 늘리기보다 보고 싶은 콘텐츠에 맞춰 선택적으로 구독하는 소비자 패턴이 자리 잡은 것이다. 시즌과 왓챠가 직면한 상황도 위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상위권 OTT 포지션을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와 만난다.
이러한 경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시즌과 왓챠를 시작으로 중장기 레이스에서 버티지 못하고 M&A 시장에 나올 OTT가 또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피 튀기는 경쟁이 끝나고 난 뒤 살아남는 OTT가 득세하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란 전망을 하고 있다. 미국 포털 시장을 잠식한 구글이나 2000년대 초반 이후 국내 IT 공룡 반열에 오른 네이버(035420)와 카카오(035720)와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란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넉넉잡아 지금으로부터 10년 정도 지났을 때 시장에 남아 있는 OTT들이 시장점유율을 양분하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 하고 본다”며 “그때까지 버티지 못하는 OTT가 다른 서비스에 M&A 되는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3등 안에 못 들면 다 죽는 ‘OTT 버전 오징어게임’은 이제 막 첫 번째 게임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