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90년대 초반의 러시아를 떠올리면 돈이 있어도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때에 사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어디서든 쓸만한 제품이 들어오면 십수명이 줄을 서기 일쑤였고 현지 상점 ‘마가진’에서는 빵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까싸’에서 별도로 돈을 지불하고 발행받은 영수증을 상품 받는 곳으로 가서 제시해야지만 구매가 가능했던 관료주의 중심 일상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슈퍼마켓은 겨우 2000년대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도 대중화된 것은 아마 그 후반부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인해 러시아에도 ‘집콕’ 생활이 시작됐다. 그런데 과연 러시아에서도 ‘집콕’ 생활이 가능하긴 할까.
락다운이 급작스레 시작되면서 나는 식품, 가전, 건축자재, 꽃배송 서비스까지 다양한 가맹점을 보유한 스베르마켓(Sbermarket) 모바일 앱을 발견하게 됐다. 이제 앱에 접속해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집 현관까지 배달되고 심지어 오전에 주문을 하면 오후에 받을 수 있으니 이게 바로 러시아의 로켓배송이다.
실제 현장에서 내 주문을 바구니에 담아주는 직원이 특정 제품이 없거나 유통기한이 짧은 경우 친절하게 전화를 주고 상의를 하고 배달원도 한없이 상냥하다. 그 친절함에도 다 이유가 있다. 바로 만족도 평가다. 서비스 업종의 직원이 대화 말미에 항상 5점 만점을 부탁한다는 얘기는 이제 러시아에서도 일상이다.
아직도 러시아가 사회주의 국가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렇게 러시아에서도 이제 직원의 능력은 고객의 만족도로 평가되고 그 점수는 돈으로 직결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비스 위에 언급한 스베르마켓은 러시아 최대 국영은행 스베르뱅크(Sberbank)가 운영하는 서비스 중 하나이다. 이렇게 러시아에서는 스베르뱅크(Sberbank), 얀덱스(Yandex), 메일닷루(Mail.ru) 3개의 대기업이 위와 같은 쇼핑 서비스 외에도 외식, 교통, 금융, 문화생활 등 생활 서비스 대부분의 분야를 아우르는 자신만의 통합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그중 가장 어렵고 까다로울 것 같은 금융의 디지털화와 대중화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스베르뱅크는 유효 고객 수가 1억 명에 육박하는데 그 비결은 개인금융 시스템을 단순화해 접근성을 높였다는 장점에 있다. 개인에게 송금을 하기 위해 인증서와 보안카드를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지인의 전화번호만 알아도 스베르뱅크 모바일 앱에서 필요한 금액을 수수료 없이 이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제 식당에서의 더치페이나 아이의 레슨비용 지불을 위해 현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비접촉, 비대면이 일상이 된 팬더믹 시대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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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YandexGo 어플로 접속하고 내 위치와 목적지를 설정하면 고정된 요금과 기사의 실명, 소속, 경력, 연락처까지 모두 확인이 가능하게 되었다. YandexGo는 택시 서비스 외에도 대리기사, 배송서비스, 카세어링까지의 종합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역시 하나의 창구에서 하나의 ID로 해결이 가능한 점이 참 편리하면서 가격도 너무 착하다.
이러한 러시아의 변화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필자 기억하는 러시아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보수적인 마인드의 나라였다. 그러나 최근 약 10년의 러시아는 너무나도 다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세대가 교체되면서 변화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이제 두려움에서 설렘으로 돌아서고 있다.
세계 영토 1위의 나라인 만큼 러시아의 발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런 면에서 IT산업이 우수한 우리 기업에게 러시아의 디지털화는 중요한 비즈니스 필드이다. 앞으로 러시아의 디지털화 과정에 우리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여 지금 싹을 틔우는 러시아판 한류와 함께 더욱 확대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