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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 ‘볕내’
우리 모두에겐 나름의 비밀이 있다. 타인이 알게 되면 부끄러워지거나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들 많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평범하지만 각자의 마음 속엔 저마다의 독특한 취향들을 숨기고 있다. 이것이 보통의 인간이다. 레진의 ‘볕내’는 평범해 보였던 여고를 배경으로 각자의 비밀과 취향의 틈을 파고든 웹툰이다. ‘제2회 세계만화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으로, 인간의 감성과 심리를 날카롭게 묘사한 게 특징이다.
‘볕내’는 여성의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여고 선생 변재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여고 2학년 13반 담임인 변재환은 반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수집하고 다닌다. 하지만 스승의 날 이후 변재환은 아이들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학교엔 변재환이 동료 선생인 보배에게 차여 잠적했다는 소문이 돈다. 소문의 당사자가 된 보배는 직접 변재환과 반 아이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볕내’는 이처럼 곳곳에 미스터리한 장치를 설치하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끔 하는 연출을 시도했다. 웹툰 속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독특한 성격과 취향을 갖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처음엔 머리카락 패티쉬가 있는 변재환만이 이른 바 ‘변태’로 보이지만,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반 아이들의 독특한 취향들이 공개되며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과연 왜 변재환이 사라지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반 아이들의 사연을 하나씩 공개하며 풀어내기 시작한다.
이 같은 연출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다른 회차를 보게끔 하는 매력이 있다. 을씨년스러운 캐릭터 연출이나 멘트, 전개들이 자극적이면서도 흥미를 돋운다. 다만 모든 소스들을 쫙 깔아두고 핵심에 접근하는 방식이어서 인내심이 없는 독자들이라면 초반부에 감상을 포기할 수도 있을 듯하다. 주변부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디테일하지만 그만큼 길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독창적이고 기발한 주제를 남다르게 표현하는 ‘볕내’의 작품성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국내 다른 웹툰 중에서도 비슷한 류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