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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률(57)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토보전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건설기술연구원 내 홍수재해방지 전문가로 손꼽힌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1988년 건설기술연구원에 입사한 이후 줄곧 홍수와 기후변화 분야에서 일을 해오며 국내외 홍수예방사업과 연구에 매진해왔다. 또 2015년부터 올해 초까지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진행한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홍수 조기경보 및 모니터링 체계 구축사업’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해 사업 전반을 총괄했다.
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본원에서 만난 이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에 대한 소회부터 털어놨다. 일본 국제협력기구인 자이카(JICA)로부터 지원을 받아 국내 하천의 제방을 쌓았던 한국이 이제는 일본과 어깨를 견주며 동남아 개발도상국의 홍수재해방지 원조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1974년에 자이카를 설립해 개발도상국에 원조사업을 펼쳤고 그중에는 하천을 정비하는 홍수재해예방 사업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며 “한국도 원조대상국 중 한 곳이었고 실제로 자이카의 도움으로 1980년대 하천 제방을 쌓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건설기술연구원 소속으로 자이카의 사업 진행 당시 한국 측 담당자로 여러번 자이카와 일을 했다.
하지만 한국이 OECD 가입을 앞둔 1991년 개발도상국 무상원조를 전담하는 코이카를 설립했고, 어느덧 동남아 개발도상국 대상의 원조사업을 선도하는 국가로 위상이 높아졌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개도국을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 가운데 홍수재해예방 관련 사업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이 참여하기 시작했다”며 “초반에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결국 홍수재해방지와 하천관리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톱 수준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따르지 못해 한국보다 뒤처지는 상황에 놓였다. 한국이 홍수재해방지와 하천관리 분야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혁신을 이룬 반면 일본은 기존의 토목적인 기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한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홍수 조기경보 및 모니터링 체계 구축사업’은 한국의 IT기술이 홍수재해예방과 만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필리핀의 수도권인 메트로 마닐라에는 여러 개의 하천이 있지만 하천의 물 높이만 보고 홍수를 예보하는 시스템만 있어 태풍과 폭우 시 인명피해가 컸다. 이에 이 선임연구위원과 사업팀은 메트로 마닐라의 툴라한 강 유역 및 파시그-마리키나 강 유역의 현장 수문 자료를 자동 시스템화해 홍수예경보 및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후 사업대상지 인근 지역의 홍수대피 여유기간이 기존보다 한 시간 이상 늘었고 필리핀 기상청의 홍수 예측 및 경보발령에 소요되는 업무시간도 기존보다 최대 3시간 감소해 홍수에 따른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우리가 구축한 홍수경보시스템을 이용해 측정한 실시간 강우량 정보와 CCTV화면이 필리핀 기상청 홈페이지를 통해 방송되고 있고 재난보도와 언론보도에도 활용되고 있다”며 “이런 면에서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이 아직 우리보다 앞선 산업 분야가 있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강점인 분야가 있는 만큼 일본과 경제전쟁도 한국이 불리하다고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