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가득 찼던 서재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느낀 소회와 단상이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인 저자는 미국 맨해튼의 침실 한 칸짜리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대규모 장서를 정리하게 됐다. 70여개의 상자에 3만 5000여권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서재가 어떤 의미인지 곱씹는다.
서재는 일종의 자서전이며 책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상기시킨다고 했다. 여백에 쓴 메모, 가끔 적어넣은 구입일자 등이 당시의 나에 대해 알려준다는 것이다. 1930년대에 나온 그림형제의 ‘동화집’이라든가 ‘돈키호테’ 등에서는 삶에 필요한 유익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함께했던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상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서재를 떠나던 날엔 낯선 장기판 왕국에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게 백색여왕이 한 말이 위로가 됐다. “네가 오늘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생각해보아라. 그리고 울지 마라.” 메리 여왕이 처형을 앞두고 자신의 옷에 수놓았던 ‘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다’란 문장은 다시금 완벽한 서재를 이룩하는 일을 고민하게 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