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안돼 공화국'

경계영 기자I 2018.01.03 04:55:00

[초혁신시대, 산업의 미래는]
①더 느려진 韓기업 혁신속도
기업들 "국내법이 해외보다 엄격"
내수 주력업종일수록 불만 더 커
"포지티브 방식이 문제" 한목소리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윤종성 경계영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말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성장 전략회의’ 주제발표에서 혁신성장 방향과 주요 과제를 설명하면서 대한민국을 ‘안돼 공화국’이라고 묘사했다. 문재인정부 경제팀을 이끄는 김 부총리조차도 산더미처럼 쌓인 규제가 기업의 성장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걸 자인한 것이다.

◇“국내 규제 강해” 응답, “약해”의 4배

이데일리와 대한상공회의소가 2일 공동으로 진행한 ‘2018 국내기업의 경영여건조사’에서 비친 기업의 규제에 대한 인식도 ‘안돼 공화국’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33.5%는 국내의 규제 강도가 주요 경쟁국보다 ‘강하다(다소 강하다+매우 강하다)’고 답변했다. 경쟁국에 비해 규제 강도가 ‘약하다(다소 약하다+매우 약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8.6%에 그쳤다. 규제강도가 ‘강하다’는 응답이 ‘약하다’는 답보다 4배 가량 많았다.

경쟁국 수준이라고 답한 비율(57.9%)이 가장 많았지만, 내수 업종일수록 규제 강도가 세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료·생활용품 업종의 55.9%가, 유통·관광 업종의 53.3%가 규제가 경쟁국대비 ‘강하다’고 답변했다. 석유·화학·에너지 업종도 규제가 ‘강하다’는 의견이 각각 48.6%에 달해 ‘경쟁국 수준’이라는 의견(40.0%)을 웃돌았다.

고강도 정부 규제는 기업들의 신사업 진출의 차질을 초래하거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배경이 되고 있다. 대한상의가 앞서 무인이동체, 바이오·헬스, 핀테크, 등 신산업분야 700여 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47.5%가 “지난 1년 새 규제 때문에 사업에 차질을 빚은 적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49.2%는 규제로 국내 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

◇의료 현장서 못 쓰는 ‘유전자 가위’

기업들은 ‘정한 것’ 외에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유전자 가위(약하고 잘못된 유전자를 효소로 잘라내는 기술)’가 대표적이다. 유전자 치료 연구의 허용범위를 유전자 질환, 암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면서 현재 치료법이 없는 경우로 엄격하게 제한하다 보니 ‘유전자 가위’ 원천기술을 갖고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업종 간 융합을 막아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를 저해하는 칸막이 규제, 대상이 광범위해 ‘걸면 걸리는 식’으로 운영되는 투망식 규제, 법체계가 기술과 시장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야기되는 회색 규제 등도 속도를 수반하는 혁신이 강조되는 초(超) 혁신시대에서 우리 기업들이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계 “정부는 후원자 역할 해야”

대한상의 관계자는 “전통산업 영역에서는 정부가 로드맵을 만들고 기업이 따라가는 방식으로 선진국이 주도하는 시장에 진입했다면 신산업에서는 기업이 앞장서 신기술, 신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인프라 확충 등 정부의 후원 역할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 미국, 일본 등 4차 산업혁명 선도국은 민간이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규제도, 자금도 푸는 동시에 교육을 강화하는 등 혁신적 인재를 육성하는 데도 힘 쏟고 있다”며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실패해도 개인이 오롯이 책임지는 등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기업들은 △자금 확보의 어려움(50.5%) △혁신 실패 시 재기 어려움(32.3%) △혁신적 인재 확보 어려움(30.0%) △상명하복의 기업 문화(28.4%) 등을 혁신성장의 장애물로 꼽았다. 기술력이나 잠재력만으로 기업을 창업하거나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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