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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식사를 하고 농담도 건넸던 화기애애하던 교무실은 지난 11일 교육부가 ‘교육분야 비정규직 개선 방안’ 발표에서 기간제 교사 4만 6000여명과 영어회화·스포츠 등 5개 직종의 강사 7000여명을 정규직 전환 대상에 제외하면서 둘로 갈렸다.
◇ 기간제 교사들 “패잔병 된 기분”
교육부 발표 뒤 정규직 전환이 가로막힌 기간제 교사들은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고 서먹해진 학내 분위기에 정교사들은 당혹해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정모씨는 “전까진 동료로 잘 지냈던 기간제 교사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정교사)들을 피하고 있다”며 “같이 커피를 마시는 자리가 있어도 오지 않거나 와서도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아 교무실 분위기가 무겁다”고 전했다.
기간제 교사들은 ‘비임용 출신은 정교사가 될 수 없다’며 정규직 전환을 반대한 정교사들과 얼굴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인근의 또 다른 초등학교에서 만난 기간제 교사 최모씨는 “아무래도 정교사들을 만나면 어색하다”며 “임용시험을 통과하지 않고는 절대 정교사가 될 수 없다고 목청껏 외친 사람들 앞에 패잔병으로 서는 기분이 들어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씨는 “솔직히 기대감이 컸다”며 “한달만에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닌데 (정부가) 굳이 지금 나서서 우리들에게 ‘비정규직’ 낙인을 찍었어야 했냐”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강서구에 위치한 B초등학교 인근 찻집에서 만난 기간제 교사 박모씨는 교육부 발표 직후 안도의 한숨을 쉬는 정교사들을 지켜보며 착잡했다고 했다.
박씨는 “학교에선 티를 못냈지만 마스크를 쓰고 기간제 교사 집회에도 나갔다”며 “‘괜찮냐, 앞으로 잘해보자’는 정교사들의 위로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져 야속하기만 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앞으로도 1년마다 재계약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데 말뿐인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오래 자리를 비우면 눈치가 보인다고 서둘러 학교로 돌아갔다.
◇ 정교사 “정부의 ‘조급증’이 학교 분열만 불러”
정교사들은 정부의 조급증이 교단만 분열시켰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약속을 남발해 기간제 교사들을 ‘희망고문’했다는 것이다.
인천지역 중학교 교사 강모씨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괜한 희망만 불어넣어 교육현장에 갈등만 키웠다”고 비난했다. 교사들은 벌써부터 내년을 우려하고 있다.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엔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교대 4학년들이 신입교사로 배치된다. 정교사나 기간제 교사 모두 그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강씨는 “기간제 교사들 입장에선 자기들 목줄을 쥐고 당겼던 이들이지 않느냐. 수가 많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섞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교육현장에서는 교단의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간제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교사의 60% 수준인 기간제 교사의 성과상여금을 100%로 인상하고, 방학을 제외한 기간 동안 계약을 체결하는 ‘쪼개기 계약’ 관행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내용은 교육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개선 방안에도 담겨 있다.
강씨는 “현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처우 개선은 반드시 추진했으면 좋겠다”며 “비정규직이라 차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면 갈등도 차츰 가라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배균 서울대 사범대 교수는 “기간제 교사가 더 늘지 않도록 채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정교사 수를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성과상여금 인상 등 필요한 처우개선 조치도 뒤 따라 이 같은 갈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