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화통토크]김종훈 "한미FTA 반대했던 경험으로 강단있게 대응해야"

김상윤 기자I 2017.07.19 05:30:00

한미FTA 산증인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데일리 피용익 김상윤 기자]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재협상을 거론한 지 12일 만에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우리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대한무역 적자를 이유로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는 사실상 한미FTA 개정 작업의 초기 단계다. 미국이 소집을 요구하면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30일 이내에 응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한미FTA 개정 착수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치열한 논리 대응이 필요하다.

문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당당한 협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데일리는 지난 18일 한미FTA의 산증인인 김종훈(65)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만나 다시 이슈로 떠오른 한미FTA 개정과 관련한 해법을 들었다. 그는 “현 정부와 여당은 한미FTA 발효 직전에 반대했던 역사를 갖고 있던 만큼 미국의 논리에 논리로 맞서되, 억지를 부린다면 강단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상보다 빨리 한미FTA 개정 요구가 공식적으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운동을 할 때부터 언급했고, 지난 4월 언론인터뷰에서는 재협상하거나 종료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했다. 발언의 강도나 빈도로 봐서 개정에 나서리라 작심했다고 봤다. 언젠가 올 일이었으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편지가 일찍 도착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부터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공동위원회를 열겠다는 것은 만나서 얘기해보고 개정인지 수정이 필요한지 등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법 개정사항이 있으면 국회랑 협의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절차를 거치려면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본다. 다만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를 끝내고 한미FTA 개정을 추진할지 동시에 추진할지는 현재로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공동위원회 장소를 가지고 초반부터 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한미FTA 조항에 따르면 문제를 제기한 미국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게 맞다. 한미FTA가 발효되기 전 협상과정에서도 장소 문제로 많이 싸웠다. 미국은 안마당인 워싱턴 D.C. 에서 하자고 했지만 우리는 좀 더 거리가 떨어진 메릴랜드에서 하자고 다퉜다. 우리가 보따리를 싸서 가는 게 그들도 마찬가지로 싸서 오라는 논리였다. 협상할 때 양측이 모두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는데 미국의 홈그라운드인 USTR 안에서 협상하는 게 결코 편하지 않다.

-미국의 개정 요구는 논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 미국의 핵심의도는.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이다. 미국 제조업 부활을 얘기하면서 자동차, 철강 업종을 언급했다. 이 분야에서 적자를 줄이면 제조업이 부활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무역적자는 협정 교정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미FTA를 없애면 한국 무역적자 근절될까.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미국이 체결한 FTA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한미 FTA가 없었으면 적자 규모가 440억 달러(2015년 기준)로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미국 무역적자도 무역 자체보다는 경제 구조 문제다. 저축률보다 투자율이 높고, 생산보다 소비가 큰 상황에서 당연히 수입 여력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동차 무역적자가 한미FTA 개정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우리나라가 사실 자동차 시장 개방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국내 신차 시장 규모가 160만대인데 25만대는 수입차이고 이중 미국 차는 2만대에 불과하다. 한미FTA 전에는 7000만대였는데 지금은 3배 이상 늘었으니 많이 늘었다. 한미FTA 발효 전 2010~2011년 추가 협정을 하면서 미국 측 요구를 들어준 부분이 효과가 있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파산신청을 했을 때다. 상호호혜적 이익을 구하는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었다. 한미FTA가 2012년 3월 발효된 해에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수입관세율 기존 8%에서 4% 낮춘 반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입관세율은 2.5%로 유지했다. 비관세 장벽도 해결해 줬다. 우리나라 환경 기준이 미국보다는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 모델별로 있는 환경 기준을 평균을 내서 이에 맞추도록 하면서 많이 양보를 했다.

이 결과로 미국은 3배 이상인 2만대의 차를 팔게 됐고, 우린 관세율 변화 크게 없는데도 미국에 100만대를 팔고 있다. 무엇을 더 해야 하나. 정부가 시장개입해서 미국차 사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유럽차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차를 만드는 게 해법이다.

-철강 부분도 대응할 논리가 있을까

△미국이 연간 8800만t 조강생산능력이 있는데 9600만t을 소비한다. 800만t은 수입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시설은 이미 노후화되서 원가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철강 산업이 부활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있다.

이런 문제도 있다. 현재 철강은 공급 과잉 업종이다. 중국이 과잉생산하다 보니 이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덤핑 등이 이뤄진다. 이는 G20 등 글로벌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미국과 한국 간 관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중국이 우리나라를 거쳐 수출하면서 원산지를 조작한다고 하지만, 이는 불법이고 제가 아는 한 그런 부분은 없다.

미국이 셰일가스 추출량을 늘리려면 유전용강관을 늘려야 할 것이다. 양국의 이해를 위해 적정한 선에서 합의를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식을 요구할 수 있을까

△로버트 라이시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80년대 젊은 나이에 부대표를 했다. 당시 일본과 무역적자 문제를 다룰 때 수출자율규제(VERㆍVoluntary Export Restraint) 방식을 도입했다. 수출국이 특정상품의 수출물량이나 가격 등을 자율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물론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자유교역에 맞지 않는다고 폐지됐던 조치다. 하지만 미국이 다시 들고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역제안할 부분은 없는가. 농산물은 우리가 피해를 본 분야다.

△자유무역은 양국 간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교류하는 것이다. 상대편이 더 싸게 만드는 품목이 있으면 이를 받아들이는 게 효율이 크다.

한미FTA 체결 당시 우리 농업 피해와 관련해 반대 목소리 많았다. 당연하다. 그때 협정에 임하던 방침도 농업 피해 최소화였다. 관세율 폐지 기간을 장기간으로 늘리는 등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지나고 보면 그때 나온 우려만큼 피해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체리, 오렌지, 아몬드 같은 품목은 우리 시장이 약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이를 막으면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될까. 소고기 수입과 관련해 광우병 파장도 겪었다. 근데 이제 미국산 비중이 상당히 커졌다. 소비자 수요가 있는데 이를 막는 게 옳은 것인가. 미국산 농축산품목을 수입을 막으려면 우리 시장에 심각한 충격이 있었는지, 소비자 후생에 후퇴했는지 면밀히 따지는 게 우선이다.

-일각에서는 이 기회에 독소조항으로 불린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외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I
SD는 양국이 서로 합의하면 없앨 수는 있다. 필수 사항이 아니다. ISD를 없애면 우리나라 미국 투자자들은 우리 정부 조치로 문제가 생기면 한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만, 미국에 나간 우리 기업은 미국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하지만, 미국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문제다.

ISD제도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나프타보다 한미FTA의 ISD가 좀더 개선된 방식으로 이뤄졌다. 좀 더 ISD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협상은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없애려면 상대국 사법부에 복속해야 한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

-우리 정부가 그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도 있다

△탄핵 정국이었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달이 지났지만 아직 정부조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여기에 북한 문제로 안보 등에 집중했던 한계도 있었다고 본다.

지금부터가 승부수다. 미국이 논리를 갖고 오면 논리적으로 대응하되 억지를 부리면 강단있게 반대를 해야 한다. 지금 여당은 한미FTA 때 반대를 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대응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FTA효과 조사’를 역제안한 것은 잘 대응한 것으로 본다.

-불리하면 한미 FTA를 폐기해도 된다는 얘기인가

△협상에 나서는 당사자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간다. 한미FTA를 최종 체결할 때도 ‘정 안 되면 깨도 된다’는 임무는 부여되지 않았다. 하지만 협상가는 국익에 맞지 않으면 깰 수 있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협상이 시작되면 우리에게 불리한 게임인가

꼭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약소국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13위, 교역으로는 7위다. 관건은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을 100% 발휘할 수 있느냐다.

국가적 난제가 생기면 우리 국민이 치열하게 이성적으로 논쟁하고 합의를 만들어 가는 힘이 있다.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된다면 당당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여곡절 끝에 통상조직이 부활했지만 산업부 산하에 남았다

△통상조직이 다시 만들어지긴 했지만 특정 산업을 소관하는 부처에 남는 것은 맞지 않다. 예를 들어 농업문제는 산업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산업부 입장에서는 농림, 해수, 중소기업 등 전체 산업을 보고 틀을 짜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지금 상황이라면 한미FTA 체결과정을 제대로 알고 있고, 미국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게 맞다고 본다.

한미FTA 개정

- 한미FTA로 축산업 연평균 1195억 생산감소…피해 가장 커 - 백운규 장관, 10일 국회 출석…한국GM·한미FTA 논의될듯 - 美 과일시장 추가개방 요구했으나…한미FTA 이후 美 과일수입 2.4배 '껑충'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