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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이 아파트는 소득과 자산이 일정 금액 이하인 무주택자에게만 1순위 자격이 주어졌다. 조건이 까다로워 어렵게 청약에 당첨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도금 집단대출이 막히고, 대출을 받더라도 이자 부담이 클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300명이 넘는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했다. LH는 미계약분이 속출하자 3차에 걸쳐 공고를 내고 재분양에 나서 모든 물량을 털어냈다. 무주택자를 위한 공공분양주택이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로 결국 유주택자에게 돌아간 것이다.
◇중도금대출 규제에 무주택자 불만 속출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 일환으로 지난달부터 집단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중도금대출을 둘러싼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중도금 집단대출 지연 또는 금리 상승에 따른 소비자(분양 계약자)의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주택협회가 조사한 중도금대출 실태에 따르면 ‘8·25 가계부채 대책’ 발표 이후부터 지난달 17일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한 신규 분양 사업장 42곳 중 분양 전에 대출 협약을 완료한 곳은 8곳에 불과했다. 정부가 집단대출을 규제하면서 대출 은행 선정 시기가 분양 이전에서 이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마저도 금융기관이 정해진 8곳 중에서도 제1금융권과 대출 약정을 맺은 곳은 3곳에 그쳤다. 제2금융권이나 지방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경우 금리가 훨씬 높아진다.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금리도 3%대 중·후반으로 올라선 상황이다. 1년 전에 비해 약 0.5~1%포인트까지 높아졌다. 제2금융권의 경우 현재 3%대 후반에서 4%대다.
가장 큰 문제는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 호매실지구 공공분양아파트뿐 아니라 앞으로 공급 예정인 단지들도 집단대출이 어려울 경우 자산이 전세금밖에 없는 무주택자들은 중도금 마련이 쉽지 않아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호매실에 공공분양에 청약했던 김모(43)씨는 “전세금 9000만원이 가진 돈 전부인데 신용대출로는 이자 부담이 너무 커 계약을 포기했다”며 “정부가 무주택자를 위해 아파트를 공급하기로 하고선 결국 집 있는 사람들 좋은 일만 시킨 꼴”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건설사 “계약률 떨어질라” 전전긍긍
중도금 대출 규제로 부담이 커진 것은 건설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신규 분양 물량이 넘쳐나고 지역·단지별 양극화가 심해지자 중도금 무이자를 내세운 사업장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반면 집단대출 이자율이 연 4%대 까지 치솟으면서 건설사로서는 자금 부담이 만만치 않은 셈이다. 올해 상반기 중도금 무이자 조건으로 분양에 나선 A건설사 관계자는 “분양 계획을 구체화한 올해 초에만 해도 2%대 이자로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그런데 시중은행의 대출 거부로 제2금융권과 대출 약정을 체결하면서 이자 부담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계약률 하락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얼마 전 경기도 의왕시 백운밸리에서 공급된 ‘의왕백운밸리 효성해링턴 플레이스’는 중도금대출 무이자 조건을 내세웠다. 하지만 대출은행을 찾지 못해 계약을 앞두고 청약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분양 계약자가 중도금 집단대출을 못 받을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계약자에게 돌아간다. 민간택지 아파트 입주자모집공고문에는 △계약자는 정부 정책, 금융시장 변화에 따라 중도금대출 조건이 제한돼도 분양대금을 자기 책임하에 조달해야 한다 △대출 불가 사유로 인한 계약 해지는 주장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중도금대출 중단에 따른 피해는 분양 주체인 사업자가 아닌 계약자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도금대출 규제가 장기화할 경우 건설사(시행사)와 계약자 간 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확산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일부에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분양가와 허위·과장광고 등을 둘러싸고 건설사와 계약자 사이에 벌어졌던 연쇄 소송전이 내년 입주 물량 공급 과잉 시점과 맞물려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