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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6년 2월 서울 강남지역에 부는 투기 바람을 묘사한 기사 내용이다. 1970년대는 정부가 추진한 서울 영동(강남) 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강남권 분양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때다. 1976년 압구정동 현대 1·2차(1140가구) 아파트를 시작으로 이듬해 한양 1·2차 아파트(1232가구), 1979년 대치동 은마아파트(4424가구) 등 대단지 아파트 입주가 이어지면서 투기 바람이 거셌다.
최근 분양권 값에 거품을 일으켜 문제가 되고 있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은 이 당시엔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바로 ‘복부인’이다. 땅이나 아파트 매물을 알선하고 돈을 받아 챙기는 중년 여성들을 지칭해 부른 ‘복부인’은 당시 부동산 투기세력의 대명사였다.
1988년 강남의 마지막 대단지 아파트로 관심을 모았던 삼풍아파트(2390가구)의 경우 청약통장엔 400만원, ‘물딱지’(가짜 입주권)엔 800만원의 웃돈이 붙었다. 당첨자 발표 직후 거래된 분양권에는 무려 2000만원이나 되는 웃돈이 붙었다. 중간에서 웃돈을 띄운 것은 바로 이들 복부인이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1989년 노태우 정부는 ‘수도권 5대 신도시(분당·일산·중동·산본·평촌) 개발’을 단행했고 단기간에 공급 물량이 늘면서 아파트값과 전셋값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1997년 대한민국을 덮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부동산시장을 또한번 출렁이게 했다. 김대중 정부가 당시 부동산 규제를 대거 풀자 자금이 시장에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떴다방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 쯤이다. 미분양으로 고전하던 경기도 용인과 일산, 남양주에서 분양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주변에 떴다방이 잇따라 등장했다.
떴다방은 부동산시장 활황세가 계속된 2007년까지 분양 현장 어디에서나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2006년 7800여 가구 모집에 38만여 개의 청약통장을 끌어 모으며 ‘당첨이 곧 로또’라는 말까지 나돌았던 판교신도시는 떴다방이 본격적으로 분양시장에 뿌리 내린 계기가 됐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이 휘청하면서 사라졌던 떴다방은 2013년 위례신도시 분양이 이뤄지면서 수도권에 다시 나타났다. 분양 열기가 뜨거운 지금은 ‘야시장’(밤에 열리는 분양권 거래시장)까지 열며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